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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홍재우 간찰(洪在愚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71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홍재우 간찰 / 洪在愚 簡札
- ㆍ발급자
-
홍재우(洪在愚, 180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12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 臘月 初四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7.6 × 5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술년(1862) 12월 4일에 홍재우(洪在愚, 180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임술년(1862) 12월 4일에 홍재우(洪在愚, 180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특별한 관계호칭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성명을 직서하여 상대와 평교 정도의 사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溟仙閣 謝候’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명선각(溟仙閣)’이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우측에 ‘竹軒 執史’라고 기록되어 있어 청풍당 안동권씨 문중에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의 후손인 사죽당(思竹堂) 권박(權樸, 1773~?)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번 편지와 시를 받고 여태 답이 늦어 죄송하다고 하면서, 요즘 건강은 좋은지 물었다. 자신은 날씨로 인해 길을 나섰다가 도로 돌아와 고생하고 병들어 지내는 근황을 전했다. 약 열흘 정도 뒤에 다시 길을 나설 예정인데, 지난번 귀로에 천연정(天淵亭)의 물소리와 눈빛이 그야말로 마음에 들어 오봉재(五峯齋)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고 춘파(春坡) 김 사백(金詞伯)에게도 시 한 수를 보냈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눈 내릴 기미가 보이니 우선 두 재상 댁에 통기하거나 불의에 방문한다면 적막한 회포에 위로 될 것이고, 날짜는 꼭 예정할 필요 없이 여가에 따라 수행한다면 흥취가 될 뿐만 아니라고 하였다. 추록에는, 탁주 한 병 차고 설월(雪月)의 때를 틈타 사립문을 두드린다면 어찌 흥취가 날 만하지 않겠냐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천연정’은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천변에 세워졌던 정자로, 강릉 추원사진관 발행 엽서에 1910년경 찍은 사진이 남아있으나 현존하지 않고 있다. 이 간찰의 기록을 통해 과거 눈 내린 천연정의 경광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또한 ‘오봉재’는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소재했던 재사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오봉서원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춘파 김 사백은 자세한 인명은 미상이다. 호가 춘파인 김 모로 사백은 일반적으로 시문에 능한 문사를 가리킨다. 본문에서 “두 재상에게 통기한다.[兩相通期]”고 한 것으로 보면 오봉재 주인과 춘파 김 사백은 모두 당상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인물로 추정된다. 발급자 홍재우는 자는 경연(景淵), 본관은 남양(南陽), 부친은 홍영섭(洪英燮)이다. 1840년(헌종 6) 경자 식년시 진사 1등 3위로 입격하였고, 음직으로 가평군수(加平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의성현령(義城縣令)‧삼가현감(三嘉縣監)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특히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1861년 8월 8일 가평군수에서 이곳으로 부임한 뒤부터 1863년 7월에 의성현령으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까지 강릉부사로 재직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간찰이 발급된 해인 1862년 역시 강릉부사 재직 당시였음을 알 수 있다. ‘명선각’의 경우,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소재의 ‘군선강(群仙江) 하구 해령산(봉화산) 북쪽 낙맥에 강릉의 삼문(三門) 가운데 하나인 명선문(溟仙門)이 있었다’고 하고, 현재도 이곳에 강릉부사를 역임한 이집두(李集斗, 1744~1820)의 필적으로 알려진 바위글씨가 남아있으므로 이곳에 소재했던 누각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존하지 않고 있다. 또한 1855년에서 1858년까지 강릉부사를 역임한 류후조(柳厚祚, 1798~1876)가 재직 당시인 1857년에 작성한 「묘산상촌향약절목(茆山上村鄕約節目)」 성책에 “知府 豊山 柳厚祚 書于溟仙閣”이라고 묵서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명선각’은 역대 강릉부사들이 거주하거나 집무를 보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 『承政院日記』 『江陵府使先生案』(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진한엠앤비, 2015(국토지리정보원 사이트 pdf)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42567 (강원도민일보 기사 “천연정” 검색)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64597 (강원도민일보 기사 “명선문” 검색) https://hanauction.com/htm/off_auction_read.htm?id=53570&off_id=135&page=1&ac_num=24 (한옥션 “묘산상촌향약절목” 검색)
참고자료
원문
頃者臨行時 委牘及璚什 迨今珍玩 稽謝甚悚 卽候萬穆 溯瞻勞禱 在愚 被天公戲劇 中途而回來復路 這間苦况 不可殫記 病餘衰軀 是豈可堪耶 待旬後更營治發前路 關心昨於歸路上天淵亭水聲雪色 政乎可意 故馳報一書于五峯齋中 春坡金詞伯納以一詠矣 朝又起看 則雪意漫天 政有山陰高致 而誰能辦此 姑或兩相通期 不意委訪 則可慰寂寥之懷 而日子不必預定 隨暇隨行 不寧爲乘興之棹耳 不備 壬戌 臘月 初四 洪在愚 拜 佩一壼村濁 乘雪月叩扉 則豈非可意處耶 好呵
竹軒執史 溟仙閣 謝候 [着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