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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송정희 간찰(宋正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69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3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3년 2월 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亥 二月 八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4.3 × 47.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3년 2월 8일에 세하(世下)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해년(1863) 2월 8일에 세하(世下)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世下’라고 표현하여 상대와는 집안끼리 혼반 등의 세의(世誼)가 있었던 사이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襄吏 謝書’라고 기록하여 발급자는 당시 양양부사로 재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우측에 ‘烏竹軒 靜座 執事’ 라고 기록되어 있어 청풍당 안동권씨 문중에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의 후손인 사죽당(思竹堂) 권박(權樸, 1773~?)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크다.
잠시 격조하여 막 서운 하려던 차에 상대의 편지를 받으니 직접 만난 듯이 위로된다고 하였다. 봄비가 내려 꽃들이 피려는 이러한 때에 고요히 기거하는 안부가 여러모로 좋은지 묻고는 그립다고 했다. 자신은 어제야 비로소 편안하다는 집의 소식을 듣게 되어 병든 회포가 조금 누그러지나 질병이 시도 때도 없이 덜해졌다 심해졌다 하니 매우 고민된다고 했다. 관동(關東)‧관서(關西)지역의 여러 승경지를 두루 완상한 뒤 대략 시문(詩文)과 기행문(紀行文)을 지은 것이 있는데, 아직 정사(淨寫)하지 못해 다음 인편에 보내드리겠다고 하며 내용을 보고 혹 흠이 있는 부분을 지적 해 달라고 부탁했다. 상대의 삼종질이 뜻밖에 찾아 와 준 것은 그 은근한 뜻에 감사하다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한 승경지 유람이나 이에 대한 결과물로서 시작(詩作) 및 기행문은 지어 주고받는 모습들을 통해 발급자의 당시 지방 수령으로서 일상이나 행위와 같은 모습뿐만 아니라 한 명의 문인으로서 활동했던 실제 모습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송정희는 자는 문오(文吾), 호는 풍야(豊埜), 본관은 은진(恩津), 부친은 송계락(宋啓樂), 생부는 송계근(宋啓根)이며, 주 거주지는 회덕(懷德, 현 대전광역시 소재지)이었다. 1834년(순조 34) 갑오 식년시 진사 3등 42위로 입격한 뒤 음직으로 영릉참봉(寧陵參奉)‧홍산현감(鴻山縣監)‧공조좌랑‧보은군수‧양양부사‧나주목사‧사복시정‧공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특히 양양부사의 경우 1861년 4월에 부임하였고, 보은군수 시절 포제를 받은 것으로 승서되어 1863년에 나주목사에 부임할 때까지 양양부사에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 · 『承政院日記』 『八道總錄』(국립중앙도서관[한古朝57-가527])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乍阻方切悵仰 卽拜惠翰 慰敵奉晤 春雨霢瀮 花意含嫩 更詢信后 靜候萬衛 旋庸仰溯區區 世下 再昨始聞家信之安 稍寬病懷 而感疾則歇劇無常 極悶極悶 以遍賞關東西諸勝之故 畧有詩文紀行者 而未及淨寫 故今便不得送呈 留俟後日 冀擭隨疵點改耳 令三從姪意外來訪 勤意可感 而忙未攄盡積懷 極悵極悵 餘留續申 姑不備謝儀 癸亥 二月 八日 世下 宋正熙 拜
烏竹軒 靜座執事 襄吏謝書 [着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