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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62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6년 송재희 간찰 / 宋載禧 簡札
- ㆍ발급자
-
송재희(宋載禧)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6년 6월 1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子 六月 十八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8.4 × 42.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56년 6월 18일에 송재희(宋載禧, 1711~17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병자년(1756) 6월 18일에 송재희(宋載禧, 1711~17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특별한 관계호칭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성명을 직서하여 상대와 평교 정도의 사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고, 수신자는 본문만 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내용에 드러나는 정황상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일 가능성이 크다. 상대가 그리운 마음이 그야말로 간절해지던 때에 문득 편지를 받고 이를 통해 요즘 무더운 날씨에도 일상이 편안하고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상대가 해귀(解歸)한다는 말은 미리 창망(悵惘)함을 면했다 하더라도, 남쪽으로 온 뒤 서로 의지하던 뒤끝에 먼저 이처럼 헤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들리겠다고 한 약조는 자리에 먼지를 쓸고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해귀(解歸)’는 여기에서는 관직에서 체직되어 돌아가는 의미로 볼 수 있고, “남쪽에 내려 온 뒤로 서로 의지하던 뒤끝에[南來相依之餘]”라고 한 말을 통해 발급자와 수신자 모두 남쪽 지방의 외직에 있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송재희는 1754년(영조 30) 2월 25일 정사(政事)에서 남평 현감(南平縣監)에 제수된 뒤로는 1757년(영조 33) 1월 27일 이비(吏批)에서 가평 군수(加平郡守)에 제수된 이력이 있으므로, 이 간찰이 발급된 해는 남평 현감에 재직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권씨 청풍당 문중의 일원 가운데 송재희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권계학(權啓學)이 있다. 그의 이력 가운데 외직에 부임한 경우로, 1754년 2월 25일 정사에서 경양도 찰방(景陽道察訪)에 제수된 뒤 1756년(영조 32) 6월 25일 이비도정에서 전적(典籍)에 제수되면서 체개(遞改)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756년(영조 41) 12월 22일 친림도정 시 연원도 찰방(連原道察訪)에 제수되었던 것이 확인되는데, 이 간찰의 발급연도나 정황상 전자일 것으로 파악된다. 남평은 현 전남 나주시 소재지이고, 경양도는 현 광주광역시에 소재했던 경양역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이므로 이들의 부임지는 거리상 큰 차이가 없다. 또한 현감과 찰방은 같은 종6품 참상에 해당하므로 동료로서 함께 부임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1754년에 각각 전라도의 부임지로 내려와 ‘서로 의지[相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발급자 송재희는 자는 영수(永受), 호는 취백정(翠白亭)‧사호각(四皓閣), 본관은 은진(恩津), 부친은 송필환(宋必煥)이다. 음직으로 1751년 선공가감역에 제수된 뒤 한성부판관‧남평현감‧가평군수‧남원부사‧장악원주부‧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1772년 임진 기로정시(耆老庭試)에서 을과 1위로 급제한 뒤 승지‧공조참의‧대사간, 1774년 갑오 등준시(登俊試)에서 병과 7위로 급제한 뒤 도총관‧대사헌 등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병조좌랑‧공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 · 『承政院日記』 <英祖 30年(1754) 2月 25日 乙巳> 등 兪漢雋, 『自著』 <大司憲宋公墓碣銘 幷序○甲子>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嚮往政勤 忽被惠狀 就審近熱 履節安勝 區區慰瀉難量 解歸之示 預免悵惘 南來相依之餘 先此分携 尤用耿然 一過之約 謹當掃榻而待之也 自餘留悉 不宣 伏惟照亮 謹謝狀上 丙子 六月 十八 宋載禧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