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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정술조 간찰(鄭述祚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07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정술조 간찰 / 鄭述祚 簡札
- ㆍ발급자
-
정술조(鄭述祚, 171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10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陽月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2.3 × 39.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7년 10월 12일 영월부사(寧越府使) 정술조(鄭述祚)가 연원찰방 권계학(權啓學)에게 보낸 상대 아들 일에 대해 조언하고, 보내 준 간폭(簡幅)에 감사하다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67년 10월 12일 영월부사(寧越府使) 정술조(鄭述祚)가 연원찰방 권계학(權啓學)에게 보낸 상대 아들 일에 대해 조언하고, 보내 준 간폭(簡幅)에 감사하다는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은 상대의 아들이 자신 쪽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부치고자 했으나 바빠서 실행하지 못했는데, 마침 상대의 편지가 도착하여 기쁘면서 송구하다고 하였다. 정술조 자신은 다시 백복령(白茯嶺)을 넘어가서 더 할 말이 없는데, 방문(榜文)에 상대의 아들이 장원을 하여 기쁘다고 하였다. 백복령은 삼척에 있는 고개이다. 본론은 상대가 이야기한 내용은 잘 알겠다고 하면서 순사(巡使)의 주장에 아래에 있는 관원 입장에서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였다. 어제 이미 관문(關文)이 도착했는데 30일로 미루어졌다고 하였다. 상대 아들은 갈 수 없으므로 집에 돌아가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전했다. 마지막으로 상대가 보내 준 간폭은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간폭은 간찰을 쓸 때 사용하는 종이를 말한다. 정술조(1711~?)는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효선(孝善)이다. 조부는 정세주(鄭世周)이고, 부친은 정진형(鄭震衡)이며, 모친은 박황(朴愰)의 딸이다. 175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3년 장령·헌납으로 관직생활을 하다가 조갑빈(趙甲彬)의 탄핵을 받아 이듬해 육진(六鎭)에서 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1787년에는 분부총관(分副摠官)에서 분도총관(分都摠官)으로 승진하였으며, 이듬해 사직(司直)에 임명되었다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치사하였다. 당시 정술조는 1766년 6월부터 1768년 12월까지 영월부사를 역임하였다.
원문
謹聞
賢胤歷過, 謂當轉向貴郵,
適緣忙撓, 未及修候, 方以爲悵.
惠書忽至, 一感一愧. 第審
政履增福, 仰慰區區. 弟再踰白
茯嶺, 其無可言. 只以榜中之
得胤君爲壯元, 爲喜耳.
所示備悉, 聞巡使自主張, 下官
實難容手, 奈何. 已昨日關文
來到, 以三十日退定. 胤君
決不可進待, 莫如歸家讀
書之爲好耳.
惠送簡幅, 甚荷甚荷. 至
於落幅之分, 尤出
望外, 多謝多謝. 江陵歷便, 必
歷臨, 是企是企. 餘姑不宣狀式.
丁亥陽月十二日, 弟 述祚 頓.
[피봉]
[관인] 連原 郵軒 回納
越州 謝狀 [手決] 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