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0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조영진 간찰 / 趙榮進 簡札
- ㆍ발급자
-
조영진(趙榮進, 1703~177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5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五月小晦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2.3 × 4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7년 5월 29일 정동(貞洞)의 참판(叅判) 조영진(趙榮進)이 연원찰방 권계학(權啓學)에게 보낸 상대가 보내 준 선물에 감사하다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7년 5월 29일 정동(貞洞)의 참판(叅判) 조영진(趙榮進)이 연원찰방 권계학(權啓學)에게 보낸 상대가 보내 준 선물에 감사하다는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은 그리워하던 시기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찰방의 업무를 잘 하고 있음을 알아 대면한 것 같으므로 위안이 된다고 전했다. 체직되어 돌아가기를 읊는 계획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으며, 모든 것이 척박해도 경직(京職)보다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조영진 자신은 병든 몸으로 지낸다고 하였고, 상대가 보내 준 세 종류의 음식에 감사한다고 전하였다. 조영진(1703~1775)은 본관은 양주이고, 자는 여읍(汝揖),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조부는 조태휘(趙泰彙)이고, 부친은 부사 조규빈(趙奎彬)이며, 모친은 민진후(閔鎭厚)의 딸이다. 1756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1년 도승지로서 사도세자의 처형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한때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헌으로 기용되었다. 또 1764년에 박세채(朴世采)의 문묘 종사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견책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예조와 병조의 참판을 역임한 뒤 황해도·경기도 관찰사로 외직을 거쳤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지중추부사를 지낸 뒤 형조판서에 올랐다.
원문
阻甚, 悵想政深. 卽拜
惠翰, 以審比來,
郵履增迪, 慰荷如對. 而
賦歸之計, 果何念耶. 凡
百雖薄, 恐勝於京職, 姑
俟無妨耶. 顧此病狀, 依
是前樣, 無足喩. 三種
情餽, 寔出
勤念, 深謝何極. 餘姑不宣,
伏惟
尊照. 謝狀上.
丁亥五月小晦, 榮進 頓.
[피봉]
[인장] 連原 郵軒 回納
貞洞 趙叅判 謝狀 [수결] 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