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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11월 21일 응교(應敎) 윤승렬(尹承烈)이 연원찰방 권계학(權啓學)에게 보낸 몇 종의 곡식을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은 충청도에서 상대를 만나서 아직까지 좋았는데, 상대의 편지를 받고 잘 지낸다는 안부를 알아 더욱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윤승렬 자신은 병든 상황에 고통인데 관직의 일에 더욱 분주하다고 안부를 전했다. 상대가 보내 준 곡식은 잘 받았으니 감사한다고 전하는 것이다. 윤승렬(1722~?)은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술(士述)이다. 조부는 윤득의(尹得義)이고, 부친은 윤정동(尹鼎東)이며, 모친은 경주김씨로, 대사간을 지낸 김성운(金聖運)의 딸이다. 176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선발되었고, 이후 요직을 역임하였다. 1765년 6월에 임금이 진전(眞殿)에서 재계할 때 공복을 벗고 부채질을 했다가 김포군에 유배되었다. 다음해 서용되어 사헌부집의 등을 지냈다. 1785년 이후 대사헌을 지내면서 홍국영(洪國榮)의 잔당들과 왕족 이담(李湛)을 숙청할 것을 주장하였다. 1788년에 강화부유수로 재직 중 방비 소홀로 인해 대신들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정조의 비호로 파직에 그쳤다.
제목 없음
忠館奉穩, 依仰迨切. 卽拜
惠札, 謹審至寒,
政駒起居珍重, 慰荷如何
可言. 承烈病狀尙苦, 而館職紛
汨, 日甚一日, 切悶奈何.
惠餉數種, 仰領
勤眷, 頃便所運, 亦無異受
期, 多荷多荷. 餘冀
對時萬休. 忙撓不宣, 伏惟
下照. 謹拜謝狀.
丁亥至月念一, 尹承烈 頓首.
[인장] 連原 郵軒 回納
城西 尹應敎 謝狀 [수결] 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