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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집 곤(錦溪集 坤)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2_B00118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전적
- ㆍ유형분류
- 집부-별집류(別集類)
- ㆍ주제분류
- ㆍ서명
- 금계집 곤 / 錦溪集 坤
- ㆍ권차명
- 금계집 곤 / 錦溪集 坤
- ㆍ저자
- 노인(魯認, 1566~1622, 조선, 편저자)
- ㆍ간행정보
- 간사지: 나주(羅州) 금계원(錦溪院) 간사자: 간사년: 서기년: 1823 왕력: 순조 23 추정시기:
- ㆍ형태정보
- 판종: 목활자본 권수: 4~8 책수: 1 질: 낙질 전: 장_매: 절_면: 책차: 2 권차: 4~8 점수: 1 크기: 31.4 × 20.2 접은크기: × 장정: 선장 계선: 유계 판구: 어미: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 광곽: 사주쌍변 반곽크기: × 단수: 행자수: 9행 20~21자 주쌍행: 서명(署名): 주표기:
- ㆍ일반주기
-
서명사항:서:발:정의: 주기사항:
- ㆍ소장본주기
-
장서관련기록:인장종수:인문판독: 혜재조진사댁장서인(蕙齋曺進士宅藏書印) 인장크기: 3.2 * 3.2장정:
- ㆍ요약주기
-
정의: 조선 중기 무신(武臣) 노인(魯認, 1566~1622)의 문집이다.내용: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귀국한 선조 때의 무신 노인(魯認)의 문집.자료특성: 전체 8권 2책이 1질을 이루나, 본 해제 대상은 권4~8 1책만 남은 영본(零本)이다.
- ㆍ언어주기
- 한자
- ㆍ기타사항
- 본 문헌의 동일한 판본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ㆍ총서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해당 문헌은 조선 중기 무신(武臣) 노인(魯認, 1566~1622)의 문집이다. 저자 노인은 본관이 함풍(咸豐)이며, 자(字)는 공식(公識), 호(號)는 금계(錦溪)이다. 노사증(魯師曾)의 아들로 1582년(선조 15)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였으며, 1602년(선조 35)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 이후 선전관(宣傳官), 수원부사(水原府使), 황해수사(黃海水使) 등을 지냈다. 전체 8권 2책이 1질을 이루나, 본 해제 대상은 권4~8 1책만 남은 영본(零本)이다.
선장(線裝)으로 장책(粧冊)되었다. 본 해제 대상의 판종(板種)은 목활자본(木活字本)이다. 표제(表題)는 ‘금계집(錦溪集)’이며, 표제 하단에는 ‘곤(坤)’이 기재되어 있어 전체 ‘건곤(乾坤)’으로 구성된 2책임을 알 수 있다. 변란(邊欄)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판심(版心)의 어미(魚尾)는 상하내향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이며, 어미 사이에 판심제(版心題)와 장차(張次)가 나타난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본문은 매면(每面)마다 9행(行) 20~21자(字)로 구성되어 있다. 주석은 쌍행(雙行)으로 제시되어 있다. 본 문헌의 크기는 세로 31.4cm, 가로 20.2cm이다.
현재 남은 제2책을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보면, 권4의 경우 「소(疏)」, 「문(文)」, 「계(啓)」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5에는 「부록(附錄)」, 권6에는 「왜속록(倭俗錄)」, 「기내오국(畿內五國)」, 「동해도십오국(東海道十五國)」, 「동산도팔국(東山道八國)」, 「북륙도칠국(北陸道七國)」, 「산음도팔국(山陰道八國)」, 「산양도팔국(山陽道八國)」, 「남해도육국(南海道六國)」, 「서해도구국(西海道九國)」이 수록되어 있다. 권7과 8에는 부록과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4의 권수면(卷首面) 하단에는 혜재조진사댁장서인(蕙齋曺進士宅藏書印)이 답인(踏印)되어 있어 창녕조씨(昌寧曺氏) 명숙공가(命肅公家) 소장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인문에서 표현되는 진사(進士)는 조명숙(曺命肅, 1712~1772)의 후손 중 조석삼(曺錫三, 1813~1896)이 진사시(進士試)에 입격(入格)하였기에 나타난 표현으로 여겨진다. 조석삼은 조환진(曺桓鎭)의 아들로, 조명숙의 증손(曾孫)에 해당한다. 조석삼의 자(字)는 공달(公達), 호(號)는 황포(篁圃)이며, 1888년(고종 25)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이 문헌의 동일한 판본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823년(순조 23) 나주(羅州) 금계원(錦溪院)에서 간행된 초간본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문
원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