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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6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6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6년 7월 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七初吉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0.5 × 45.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주변의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 전하는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46년 7월 1일에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 자신을 ‘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魯謙’은 동 문중의 여타 간찰 가운데 ‘김노겸’ 간찰이 있는데, 서체 및 내용 상 동일 인물로 파악된다. 또한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기록된 ‘鴻山倅謝書’를 통해 발급자는 당시 홍산현감(鴻山縣監)에 재직 중임을 알 수 있고, 그 우측에 ‘月圃客榻回納’이라고 기록하여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로 당시 객지에 나와 있던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와 격조한 상황에 대해 자신이 지방에 부임한 뒤로 서로 떨어져 소식도 통하기 어렵고, 이전에 상대의 편지에 대한 답장도 서울 사저에 사람이 없어 전하기 어려웠던 데다가 공사로 바쁘고 병들어 이룰 수 없었다고 하였다. 뜻밖에 지인에게서 상대의 편지를 받고 장마 더위가 심한 이 때에 객지에서의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되었다고 하였다. 다만 눈앞의 고생은 스스로 취한 것이겠지만 함께 때를 기다린다면 다행이라고 하면서 세간사는 기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패배한 장수 마냥 있으면서 자신을 졸장부에 규모가 졸렬한 사람으로 여길 터이니, 늘그막에 부끄러운 신세라고 하는 등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500원은 난동(蘭洞)에 유치(留置)하려다가 주저하고 있었는데, 상대의 뜻에 따라 이번에 부쳐 보내니 상고하여 받으라고 하였고, 지물[紙地]은 모두 사서 쓰고 있는데다가 서울에는 생산하는 것이 없어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상대가 부탁한 다소의 일은 잘 알았지만 자신이 외방에 있는 터라 마음을 다해 도모할 길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이 간찰의 발급 연도는 단지 ‘丙’만 기록하였는데, 피봉에 스스로 홍산수령[鴻山倅]임을 밝혀두어 병오년인 1846년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당시 지방관의 관직생활의 단편을 확인할 수 있고, 사인들 간에 물품을 주고받는 모습, 서로의 부탁을 들어주는 등의 일상 대소사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김노겸은 자는 원익(元益), 호는 성암(性菴)·길고자(吉皐子),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사주(金師柱), 아우는 김노석(金魯錫)이다. 1814년(순조14) 식년시에 진사로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혜릉참봉‧예빈시주부‧홍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845년 홍산현감에 제수된 뒤에는 1847년에 충청우도 암행어사 송정화(宋廷和)의 서계(書啓)에 의해 조운선에 곡물을 수량대로 싣지 않았다는 등의 죄로 나추(拿推)되어 공초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
- ·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月圃客榻回納鴻山倅謝書
心旣相照阻枉何有然來此以後東南角涯信息亦難以時相通前此惠書之承見亦似二次而京第無人主幹答書信傳極難且緣公私氄擾重以衰病有意未遂卽於謂外金友之胤專此委訪已覺眼靑而又承吾兄情修備審潦熱客履萬重慰仰曷喩第目下喫苦乃是自取不須怨尤亦不必慮念然如果湊合果熟渠成則何幸何幸而世間事何可必也弟則敗軍之將而老於行陣者不敢容易談兵想必以我爲拙丈夫拙規模也弟衰境此役實爲萬萬顔騂更以何語向人說道耶老醜之極棄置勿復道耳伍佰圓來時切欲留付於蘭洞而猶有未信底意尙此趦趄矣今示如此玆以送付考納如何紙地勿論葉添紙皆爲貿用而京肆亦無所産可以表情者未免空簡還甚悵悵耳多少示意非不諒悉而此身在外萬無謀忠之道奈何奈何但庸企菀悶歎而已餘患泄苦谻艱此胡草紙窮姑不宣謝丙七初吉弟魯謙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