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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58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2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2년 9월 1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人菊月旬一朝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3 × 22.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임인년(1842) 9월 11일 아침에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 자신을 ‘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魯謙’은 동 문중의 여타 간찰 가운데 ‘김노겸’ 간찰이 있는데, 서체 및 내용 상 동일 인물로 파악된다. 또한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月圃回敬’이라고 기록하여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임을 알 수 있다. 그리운 회포가 더욱 간절해 질 때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서리 내리는 계절에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되지만, 과거의 원방(原榜)에 들지 못한 것은 분한 일이라고 하였다. 자신도 아들이 과거 보러 올라왔다가 떨어져 돌아갔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일은 잘 알겠지만, 자신도 아분(雅分)이 없어서 함께 힘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기필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 인편에 편지를 받아 보내주고자 했지만, 오늘 낮에 돌아가는 자를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없고 게다가 작서자(作書者)의 편지를 전편(轉便)에 맡기기에는 혐의가 있어, 서울에서 받아 올 적에 그대로 본종 편에 부칠 계획이니 염려 말라고 했다. 요즘 누가 세호(世好)를 알겠냐마는 그래도 자세한 곡절은 협지에 써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당부하였다. 본문에서 상대가 부탁한 일은 모종의 일에 대해 어느 유력자의 힘을 빌리기 위해 서찰을 부탁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발급자는 이 일에 대한 경과를 알리고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발급자의 사고관이나 당시 이루어지던 청탁의 관행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발급자 김노겸은 자는 원익(元益), 호는 성암(性菴)·길고자(吉皐子),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사주(金師柱), 아우는 김노석(金魯錫)이다. 1814년(순조14) 식년시에 진사로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혜릉참봉‧예빈시주부‧홍산현감(鴻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844년(헌종10)에는 헌종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의 가례 때 설치된 가례도감의 감조관에 임명되자 당시 직명[實職]이 없는 상황에서 군직(軍職)으로 부사용(副司勇)‧부사과(副司果)에 제수되기도 했다. 1845년 홍산현감에 제수된 뒤에는 1847년에 충청우도 암행어사 송정화(宋廷和)의 서계(書啓)에 의해 조운선에 곡물을 수량대로 싣지 않았다는 등의 죄로 나추(拿推)되어 공초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
- ·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蒹葭白露懷往益懇懇卽拜承耑問謹審霜令兄候萬重仰慰萬萬第原榜之見屈憤咄奈何許多江陵人不見吾兄姓名其時悵咄如何盡言弟亦兒子上來良貝而歸良可歎也敎意謹悉而弟則果無雅分不得不聯臂而其緊切無慮不可必是甚爲菀此便切欲受書送之而稱以今午還發不可强挽且作書者之書給轉便亦似爲嫌方圖自京受來仍付本宗便爲計此則勿慮如何近日誰知世好耶然第當縷縷成小錄胎入送之如何餘立促姑留不備壬人菊月旬一朝弟魯謙拜
月圃回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