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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이조형 간찰(李祖馨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633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3년 이조형 간찰 / 李祖馨 簡札
- ㆍ발급자
-
이조형(李祖馨, 178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3년 12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丑臘念七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1.6 × 4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축년(1853) 12월 27일에 제(弟) 이조형(李祖馨, 178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신자는 본문에서 언급한 ‘月圃家’나 동일 발급자의 여타 간찰을 참조하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임을 알 수 있다. 병들어 누워있는 와중에도 예스럽고 천진하기가 짝이 없을 상대를 그리워하던 중에 홀연히 편지를 받고는 매우 위로 되었고, 요즘의 유행병은 앓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상대의 집안도 면치 못한 것이고, 자신의 경우도 온 집안사람들이 독감에 걸렸다는 등의 근황은 전달했다. 상대를 위해 이번 겨울의 기회에 크게 힘을 써서 가망이 있을 것 같았는데, 24일 대정(大政)에서 결국 실패했다고 하는 등의 상황도 알렸다. 서울 소식은 별다른 것이 없고, 홍 태(洪台)는 상복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2달 정도면 나와 입직 할 것이니 그 뒤에 도움이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받은 건시(乾柿)는 감사하다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대정에서의 실패’는 발급자가 수신자를 위해 어느 벼슬자리라도 추천되기를 힘써 주었지만 결국 음력 12월 대정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그리고 ‘홍 태’의 경우 ‘台’는 보통 2품 당상관에 대한 호칭이므로 홍재철(洪在喆)로 추정된다. 그는 1851년에 병조판서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심능규의 저서 『월포기(月圃記)』에도 「판서 홍재철에게 올리는 편지[上洪判書【在喆】書]」가 실려 있으므로 연관이 있을 듯하다. 또한 건시와 같은 음식물을 왕래하는 등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수발급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그 당시 일들의 단편적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이조형은 자는 경술(景述), 본관은 경주(慶州), 부는 이명한(李命漢)이고 거주지는 여주(驪州)이다. 순조 9년(1809) 대증광시(大增廣試) 병과 30위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승정원승지‧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이 간찰이 해당 문중에 발급된 중요한 경위로 추정되는 관력은 강릉부사 재직이며, 이를 통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그는 정미년(1847) 10월에 부임하였고, 무신년(1848) 6월에 “관청 건물을 수리하며 비방을 초래했고, 분수에 넘쳐 원망이 이르렀다.[謗招繕廨 讟及濫觴]”고 한 감사의 폄제(貶題)를 받고 파직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읍민의 금전을 거두어 객사를 중수한 일 때문이라고 한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沈能圭, 『月圃記』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참고자료
원문
病臥涔涔中泉石猶或想到或想到泉石則泉石主人當今世如月圃之循古葆眞者無其䨥矣象想眉宇言論直欲奮飛拍肩掀眉吐舌此際手畫忽墜癸丑將盡之時也奉讀屢回慰當如何然此世輪感無人不呻吟月圃家何以獨免是則不爲仰慮耳弟滿室毒感慮死者幸生而愁痛之樣不可以筆長陳爲月圃之地今冬則因機會之好大發力故竊有望矣卄四大政竟無味此將奈何騅不逝兮雖明春無可奉之道耶洛耗別無外他浮行之說月圃亦有耳煩不錄耳洪台服閱矣若過二朔則應出而仕其後可有助耶乾柿可以療飢多感多感眼昏不備謝式癸丑臘念七弟李祖馨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