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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즉일에 윤치용(尹致容, 179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자신의 성명을 기재하지 않고 ‘煩逋’이라고 쓰고 있어 정확한 인명을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문중 소장 여타 간찰 가운데 ‘윤치용(尹致容) 간찰’과 비교하여 서체나 내용이 비슷하고 발급자 관련한 몇몇 투식들이 같은 것으로 보면 발급자를 윤치용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명숙공종가 간찰 중 윤치용 간찰의 수취인은 모두 심능규이므로, 마찬가지로 심능규로 보인다. 지난날 상대와 만났을 적에 다급하게 헤어짐을 면치 못해 남은 회포가 간절했었는데, 오늘 일부러 편지를 보내주어 이를 통해 그간 따뜻해진 날씨에 상대의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그리도 상대 집안의 혼사가 하룻밤 사이를 두게 되었으니 기쁜 가운데서도 필시 분주하고 걱정이 있을 것이니 염려된다고 했다. 자신은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쇄관(曬官)을 접응하는 일에 신경 쓰이고, 감사의 순부(巡部)의 경우 비록 노문(路文)이 없었더라도 반드시 우리 고을에 들어올 것이니 대접하는 제반 일 때문에 애타고 고민된다고 했다. 여러 물품들은 마침 역참으로 내보내 지대(支待)하는데 쓰게 하여 남은 것이 없고, 단지 흑청의(黑靑依)와 좌견(左牽) 4건만 빌려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롱(紗籠)의 경우 1쌍 밖에 없는데 이것도 역참으로 내보내서 상대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끝으로 혼사를 잘 치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발급자는 강릉부사 재직 중 이 간찰을 발급한 것으로 보이며, 포쇄관(曝曬官)이 강릉부에 왔던 일, 감사의 순부와 노문의 발행 및 지대에 관한 일, 사가(私家)의 혼례 때 사용되었던 혼구(婚具)의 일부와 이를 일반 사인이 수령에게서 빌려 쓰고자 했던 정황 등 당시 모습들의 단편적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윤치용은 자는 대수(大受), 본관은 해평(海平), 부는 윤경렬(尹慶烈)이다. 1822년 식년시 진사 2등으로 입격하였고, 음직으로 승지‧여주목사‧나주목사‧강릉부사‧영변부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이 간찰이 해당 문중에 발급된 중요한 경위로 추정되는 관력은 강릉부사 재직이며, 이를 통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그는 기미년(1859) 봄에 부임하였고, 재임 당시의 치적을 통해 ‘교화로 다스려 이민들이 복종하였고, 정사는 고르고 송사는 간이하였다.[以化爲治 吏民畏服 政平訟簡]’는 감사의 포제(褒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와 관련한 일화 중에는 경신년(1860) 봄에 강원감사 김시연(金始淵)이 관할 고을들을 순시하던 중 강릉부의 백일장 설행과 관련한 일로 강릉부사였던 윤치용과 대치하는 일이 있었는데 감사가 누차 막료를 보내 만나기를 청하여 일이 해결되었고, 선비들이 이에 대해 칭송했다는 것이 있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참고자료
제목 없음
謹謝上向進未免凌遽餘懷尙切卽承委存謹審間暄靜候萬重慰仰慰仰而婚事隔夜嘉悅之中亦必擾惱旋用獻慮記下病劣帶昨而曬官之接應已是關心巡部雖無路文必將入邑云供億之節亦甚薰悶奈何諸具適値出站支待見無餘存只以四件黑靑衣及左牽則送借而至於紗籠只有一雙者亦爲出站可謂皮不存無以仰副一時借用亦不得如意極歎極歎餘在拜展不備惟祝親事順成焉卽旋記下煩逋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