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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정봉시(鄭鳳時, 1855~1937)가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이다. 정봉시는 자는 성소(聖韶), 호는 송리(松里),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강원도 출신이다. 1891년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이후 춘천ㆍ창녕ㆍ이천ㆍ의령군수 및 함경남도관찰사, 경학원대제학(經學院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이른바 일제 부역 유림 중 하나이다. 수신자는 호가 치당(致堂)인데, 성명은 상고하지 못하였다. 이 간찰은 시전지(詩箋紙) 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장의 끝인 “良”과 둘째 장의 시작인 “應榜”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그 중간에 한두 장이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응방(應榜)은 과거시험 합격자를 발표하는 행사에 응하는 것을 말한다. A004_01_A00549_001은 정봉시가 같은 날짜에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므로, 상호 참조해 볼 수 있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정봉시는 상대의 편지를 받고 답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는데 거듭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아울러 들었다고 하였다. 이어 편지를 받고서 세월이 또 많이 흘렀다고 하면서,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상대와 그 두 아들의 안부를 다시 물었다. 특히 추운 겨울에 가난한 집에서 생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지 물었다. 정봉시는 중추(中秋)에 서울에 들어왔다가 10월 20일에 동쪽으로 건너가서 누이의 혼사를 치르자마자 또 다시 서울에 들어왔다고 하면서, 몇 달 사이에 천여 리를 다니느라 일신이 고생스럽다고 하였다. 다음 장 초두에 응방(應榜, 과거 합격자가 창방(唱榜) 행사에 응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데, 앞 장이 유실되어 구체적인 내용 파악은 어렵다. 당시 정봉시는 회시(會試)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서울에 체류하고 있었다. 끝으로 새해인사를 전하였고, 추신에서는 상대의 조카에게는 별지로 안부를 묻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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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致堂我兄回敬頃承惠訊稽复訟愆荐拜崇翰感與悚幷急景駸駸日又富矣更伏請臘尾兄體在省曼旺哲嗣元季安侍天寒白屋年底調過何以接濟否伏溸區區忱頌弟中秋西入陽念東渡纔過妹婚又復入都數朔之內行盡一千餘里一身役役良
2) 應榜傍人亦爽闊也歲聿其暮悠悠我思伏冀迓新增祉不備謹复己丑蜡月念日弟鳳時拜拜賢咸兄許附尾請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