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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신지외 23명 상서(辛遲외 23명 上書)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2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8년 신지외 23명 상서 / 辛遲외 23명 上書
- ㆍ발급자
-
신지외 23명(辛遲외 23명,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 기관/단체)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01.5 × 7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부분 훼손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38년 강릉의 화민(化民) 신악(辛渥) 등 23인이 權億榮의 처 여흥민씨의 절행의 정려를 청원하며 아울러 연호잡역을 면제해 달라는 취지의 강릉도호부사에게 올린 상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38년 강릉의 화민(化民) 신악(辛渥) 등 23인이 연명으로 강릉도호부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문서가 작성연대 부분이 결락되었으나 관련문서를 통해 이 문서는 무술년(1838 헌종4)에 작성된 것을 확인하였다. 고(故) 권억영(權億榮)의 처 여흥민씨(驪興閔氏)의 효열(孝烈)에 대해 포장(褒獎)의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감영에 보고해서 처리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고 권억영은 평후공(平厚公) 권충(權衷 1349~1423)의 후손으로 절부(節婦) 강릉최씨의 8대손이며 효행(孝行)으로 알려진 감찰어사 권덕유(權德裕)의 7대손이고, 그의 처 여흥민씨는 묵헌(黙軒) 문인공(文仁公) 최지(崔漬)의 후예이고 효행으로 알려진 찰방 최사눌(崔思訥)의 7대 손녀임을 밝혀 가문을 소개하는 내용을 먼저 적었다. 그리고 여흥민씨의 효열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흥민씨는 권억영과 혼인한 이후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마을에서 효부라는 칭송을 들었는데, 임진년(1832 순조32) 전염병이 돌았을 때 시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할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서 마시게 함으로써 잠시나마 소생할 수 있게 하였고, 장례 및 삭망 제전(祭奠), 조석으로 올리는 상식(上食)에 의복이나 장신구를 팔아 정성을 다해 마련하였다. 을미년(1835 헌종1)에는 남편이 사망하자 부음을 들은 날로부터 물도 넘기지 않았는데 열흘이 되도록 죽지 않았고, 이후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은 담사(禫祀)를 지내고 나서 목숨을 끊을 것이라 말하더니,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 정성을 다해 치르고 또 담사를 지내고 난 뒤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진하여 처음 초상 때에 정했던 마음을 그대로 지켰다는 것이 요지이다. 시부모를 효성스레 봉양하였고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켰으니 효와 열을 겸비한 탁이한 행실임을 강조하였다. 전후로 감영과 고을에 상서를 올려서 받은 처분 내용이 정중할 뿐만이 아니었는데 아직 포장의 은전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본읍에서 먼저 복호(復戶) 4결(結)을 획급하고 연호잡역(煙戶雜役)을 면제해주고 이런 뜻을 감영에 보고하여 조정에 상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다. 이에 대해 강릉부사는 ‘이러한 효열은 지난 역사에도 흔치 않다고 하면서 포상하는 뜻에서 본읍에서 이전의 규례에 따라 복호를 지급하는 문제를 향작청(鄕作廳)이 논품하여 시행함이 마땅하다.’는 지시를 내렸다. 정려가 조정에서 내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과정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반면, 효자열녀집안으로 인정을 받아 실질적인 탈역(頉役)의 혜택을 받는 것은 본관(本官) 수령의 권한 범위 안에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이 제사로 인해 여흥민씨가는 4결(結)의 복호(復戶)를 지급받고 연호잡역(煙戶雜役)을 영구히 면제한다는 내용의 완문(完文)을 받아 경제적 혜택을 받게 되었고, 정려는 1863년(철종14)에 받은 것을 관련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문
化民辛渥等 謹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 旌孝旌烈 邦國之典也 獎善獎美 宰牧之政也 而猗哉朝家升聞之路 實由營邑報達之階也 近者本面有嘉尙卓異之行 而不可泯滅 故玆敢齊籲伏願財察焉 士人權億榮 卽臨津節死平厚公衷之後孫 節婦江陵崔氏之八代孫 孝行監察御史德裕之七代孫 其妻驪興閔氏 號黙軒文仁公漬之後裔 孝行察訪思訥之七代孫女 而自新婚之後 與其夫億榮 不顧身勞 以養其舅姑 而家雖甚貧 賣針傭織 飮食衣服寒暖 極力辦備 皆得其宜 以安其舅姑 閭里咸稱孝婦矣 當于壬辰時患 其舅栢及其夫億榮 出避在外 而與其柴叔 以救其姑之病 而所用之藥 非但湯劑 雖至汚之物 必先嘗而後進 暫不離側 以觀病勢 至于冬十一月十三日平明 見其氣絶 卽咬脂出血 以灌其口 又咬一脂連灌 俄而得甦 乃盡言子女間身後之事 而其日戌時奄忽 終未能救生 雖一日之甦 若非閔氏之誠孝 豈能若是乎 况値歉歲 殯葬祥事及朔望祭奠朝夕上食 或賣首餙衣服 或乞隣族 竭誠辦得 如禮終祥 至于乙未三月 其夫億榮 以虐癘 死於襄陽府 自聞訃日 水醬不入口 一旬未能滅性者 若非彌中之節行 豈能如是乎 但頭髮面墨毁身 晝哭於殯所 及其葬後 一向哭擗 或與隣里及大小家情意相通之人 接語必曰 我之命將盡於禫祀之日矣 每言若是 寢處於靈筵之側 而廢却粒米 以至大小祥事 竭力盡誠 又於禫祀 依禮過行 而俟其昒昕 暗入夾室自飮毒藥 出告于舅主前曰 三霜已畢 又經禫禮 則新婦三從之道盡矣 自言從夫於泉下云 而其舅則鱞居也 夏衣一襲豫備 跪進於言善之地 卽爲奄忽 而如此之計 中心已決於初喪之後 而誰能知如言於今日乎 當其斂襲之時 翻閱衣裳 則有何滿紙諺錄 披而覽之 乃亡人遺書也 書中所言 以鱞居其舅不得終養之意 節節鳴寃 其他哀辭聞見者 莫不流涕也 致孝於舅姑 節死於夫 則孝而兼烈者 世所幾希也 婦人之旌烈者 間或有之 而未有盡善於此矣 生而極其孝於舅姑 盡其哀於奉几 死而得其禮於處身 歸而泄其寃於遺書 則此非稀世之卓行乎 自其閭里 無不稱美 而前後營邑之題 不啻鄭重 而實未有褒獎之典 亦未有上達之道 故齊聲告由 先自本邑 特加褒獎之典 劃給孝烈復各四結 除減煙戶雜役 以此意轉報營門 以爲上達 無至泯滅 千萬無任祈懇之至城主閤下
▣…▣日 金始瓚 辛錫運 崔衡魯 沈義祖 權友榮 金用槿 黃德升 曺錫濬 崔奕 權敎民 辛{氵+策} 金羲俊 曺獜振 金始貞 權柞 沈天祖 李漢儀 權達榮 崔渙 曺錫孝 金駿九 朴時英 姜羽魯 等
〈題辭〉
如此孝烈 可謂往牒所罕 前狀之悉嘉嘆之題音 而轉報雖有時 其在褒賞之意 不可不先自本邑 依已例給復 鄕作廳論稟施行宜當者 卄日 [着押] [官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