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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김연구외 26명 상서(金演九외 26명 上書)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2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8년 김연구외 26명 상서 / 金演九외 26명 上書
- ㆍ발급자
-
김연구외 26명(金演九외 26명,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 기관/단체)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8년 11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申十一月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06.8 × 79.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비교적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8년(헌종14) 11월에 유생 김연구(金演九) 등 27인이 고(故) 권억영(權億榮)의 처 여흥민씨(驪興閔氏)의 효열(孝烈)에 관한 행적을 강원 감영에 보고하여 조정에 알게 함으로써 정포(旌褒)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강릉도호부사에게 올린 상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48년(헌종14) 11월에 유생 김연구(金演九) 등 27인이 강릉도호부사에게 올린 상서로, 고(故) 권억영(權億榮)의 처 여흥민씨(驪興閔氏)의 효열(孝烈)에 관한 행적을 강원 감영에 보고하여 조정에 알게 함으로써 정포(旌褒)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다. 여흥민씨의 효열 행적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흥민씨는 권억영과 혼인한 이후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손수 바느질과 길쌈으로 시부모를 효성스레 봉양하였고, 임진년(1832 순조32) 시환(時患 유행성전염병)에 시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여 기절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서 마시게 함으로써 잠시나마 소생시켰고, 시어머니의 장례 및 삭망 제전(祭奠), 조석으로 올리는 상식(上食)에 의복이나 장신구를 팔아 정성을 다해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또 을미년(1835 헌종1) 3월에 남편이 학질로 사망하자 장례 및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을 정성을 다해 치르고 또 담사(禫祀)를 지내고 난 뒤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진하였는데, 이는 처음 초상 때에 이미 마음을 정했던 것을 그대로 지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효와 열을 한 몸에 겸비하여 탁이한 행적이 있음에도 아직 정포의 은전을 받지 못한 것을 호소하면서 지금 식년(式年)을 맞이하여 조정에 보고할 시기가 되었으므로 여흥민씨의 행적을 감영에 논보(論報)하여 정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식년은 간지에 자(子), 오(午), 묘(卯), 유(酉)가 들어가는 해로 3년마다 돌아오는데, 지금 무신년이 지나면 내년 기유년이 식년이므로 두 달 전에 미리 이 상서를 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강릉 부사는 ‘들으니 매우 흠탄을 그치지 못하겠다. 더욱 공의(公議)를 모아서 감영에 보고할 일이다.’라고 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러나 관련문서를 통해 볼 때 더 많은 시간이 흘러 1863년(철종14)에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儒生金演九等謹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 旌孝旌烈 邦國之典也 獎善獎美 宰牧之政也 而猗哉朝家升聞之路 實由營邑報達之階也 近者本邑有嘉尙卓異之行 而不可泯滅 故玆敢齊籲伏願財察焉 故學生權億榮 卽臨津節死諡平厚公衷之後孫 節婦江陵崔氏之八代孫 孝行監察御史德裕之七代孫 其妻驪興閔氏 諡文仁公漬之後裔 孝行察訪思訥之七代孫女 而自新婚之初 與其夫億榮 不顧身勞 以養其舅姑 而家雖甚貧 賣針傭織 飮食衣服寒暖 皆得其宜 以安其舅姑 閭里咸稱孝婦矣 當于壬辰時患 其舅栢以嚴父之威 强奪其子億榮誠孝之志 出避在外 而與其柴叔 以救其姑之病 而所用之藥 非但湯劑 雖至汚之物 必先嘗而後進 暫不離側 以觀病勢 至于冬十一月十三日平明 見其氣絶 卽咬脂出血 以灌其口 又咬一指連灌 俄而得甦 乃盡言子女間身後之事 而其日戌時 奄忽終未能救生者 其於天命之將盡 何雖一日之甦 若非閔氏格天之誠孝 豈能若是乎 况値歉歲 殯葬祥事及朔望祭奠朝夕上食 或賣首餙衣服 或乞隣族 竭誠辦得 如禮終祥 鄕里咸服其至孝矣 至于乙未三月 其夫億榮 以虐癘 死於襄陽府 自聞訃日 水醬不入口 一旬未至滅性者 若非彌中之節行 豈能如是乎 不櫛不洗 頭髮面墨毁身 晝哭於殯所 及其葬後 一向哭擗 或與隣里及大小家情誼相通之人 每接語必曰 我之命將盡於禫祀之日矣 恒言若是 寢處於靈筵之側 而廢却粒米 以至大小祥事 竭力盡誠 又於禫祀 依禮過行 而俟其昒昕 暗入夾室飮毒 出告于其舅曰 三霜已畢 又經禫禮 則新婦三從之道盡矣 自言從夫於泉下云 而其舅則鱞也 夏衣一襲豫備 跪進於言善之地 卽爲奄忽 噫自盡其命之計 中心已決於初喪之後 而誰能知如言決死於此日乎 當其斂襲之時 翻閱衣箱 則有何滿紙諺錄 披而覽之 乃亡人遺書也 書中所言 以鱞居其舅不得終養之意 節節鳴寃 其他哀辭聞見者 莫不流涕也 致孝於舅姑 節死於其夫 則孝而兼烈者 世所幾稀也 盖婦人旌烈 間或有之 而未有盡善於此矣 生而極其孝於舅姑 盡其哀於奉几 死而得其禮於處身 歸而泄其寃於遺書 則此非希世之卓行乎 自其閭里 至于擧鄕 無不稱美 而前後營邑之題 不啻鄭重 而尙未有啓達之道 亦未有褒獎之典 而適値今式報達之時 故生等玆以齊聲仰籲 伏願垂察後 故學生權億榮妻閔氏孝烈行蹟 具由論報營門 以爲啓聞旌褒 一以爲扶植彛倫 明敦敎化之地 千萬無任悚仄祈懇之至 城主閤下
戊申十一月日 儒生金演九 崔羲河 曺錫孝 金晉浩 鄭東基 朴曾若 金基奕 崔衡魯 沈義祖 辛命漢 金用槿 權豊榮 趙萬城 黃德升 沈鶴書 李東和 崔弼容 柳晃 金聲九 崔秉燁 金東星 曺桓振 崔志益 李鍾燁 金東冕 金用楫 金錫重
〈題辭〉
聞甚欽歎無已 當益採公議 報營向事 十一日 [着押] [官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