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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권종학 상서(化民 權鍾學 上書)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17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84년 권종학 상서 / 化民 權鍾學 上書
- ㆍ발급자
-
권종학(權鍾學,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 기관/단체)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84년 9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申九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96 × 6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84년(고종21) 9월 정동면(丁洞面)에 사는 화민(化民) 권종학(權鍾學)이 강릉부사에게 올린 상서로, 자신의 모친 여흥민씨(驪興閔氏)가 정려(旌閭)의 은전으로 받은 복호(復戶)를 그대로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대대로 살고 있는 정동면(丁洞面)에는 효자문(孝子門)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곳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선조로서 두 열부와 한 효자의 정려가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두 열부 가운데 자신의 모친인 여흥민씨는 지난 임진년(1832 순조32)에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로 위독한 시어머니를 연명시켰고, 또 정유년(1837 헌종3)에 남편의 담제(禫祭)가 끝난 날 밤에 독을 마시고 자결하여 남편을 따라갔던 탁이한 행실로 인해 마침내 1863년(철종14) 조정으로부터 정려를 받아 영구히 연환(烟還) 잡역(雜役)을 면제받고 급복(給復) 4결(結)의 특전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 봄에 효열 집안에 지급한 복호(復戶)를 혁파해서 연환 잡역에 포함시키는 일이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시정을 요청한 것이다. 권종학은 지난 달 8월에 같은 사안으로 강원감영에 상소를 올렸었는데 당시 강원도 관찰사는 교체 중에 있었으므로 ‘신관(新官)이 부임하기를 기다리라.’는 제사를 받았었다. 이제 다시 강릉부에 상서를 올려 예전대로 환곡을 견감해주고 잡역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강릉부사는 ‘조정으로부터 포양을 받은 집안의 호역(戶役)을 면제해주는 일에 관해서는 지난번에 전령(傳令)이 있었으니 실제로 정려를 받았다면 번거롭게 호소할 필요 없이 규례대로 면제해줄 일이다.’라는 제사를 내려주었다. 이처럼 효자나 열녀에 대한 정려는 단순히 가문의 지위 상승효과뿐만 아니라 복호 즉 호역을 감면해 주는 등의 현실적인 경제적 이권을 동시에 얻는 일이기도 하였다.
원문
丁洞面居化民權鍾學謹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 忠孝烈國之大義 人所難行 是以國有忠貞 則褒其節義 表厥宅里 家有孝烈 則闡其志行 樹之風聲 故孝子之家 必有烈女 孝烈之邑 又有忠臣 古所謂求忠臣必於孝子之門 豈不合哉 噫民世居本面 有以孝子門爲里號者 卽民之先祖兩世二烈一孝旌閭之地 而嘉節褒蹟 昭載邑誌風䪨 愈久遺澤未艾 民之母驪興閔氏 往在壬辰 咋指延命於先姑疾革之時 又於丁酉 飮毒就節於民父禫畢之夜 以成同穴之願 其他懿行 已悉前狀 積成卷軸 孝烈雙全 公議不泯 曾在哲廟癸亥 命旌棹楔之典 永除一家烟還雜役 給復四結 感荷聖代光明廣截之澤 雜役者 卽結戶首應行大川橋役與本府所納松炭價蠲減者也 不意今春 以一二歧貳之論 革罷孝烈復戶 渾排烟還 故蒙褒之家 不勝憤鬱 聯名呈營訴邑 至承蠲頉之題 伏不勝感祝 而民家亦是
蒙褒之復也 去月呈營 至承待新官赴任敎是 故民之前後實蹟 帖聯仰訴 細細垂察後 旌閭之復 依前蠲還除役之意 嚴明題下 以明聖代褒獎之典 千萬無任顒祝之至 城主閤下 甲申九月日
〈題辭〉
天褒家頉戶事 向有所傳令是遣果 此實蒙褒旌閭 則不必煩訴 依例頉給向事 十月初二日 該掌 行使[着押] [官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