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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2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5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미상년 12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74본문: 臘之卄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3크기: 22.5 × 12.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연말에 보낸 문안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澹人集 卷14 書, 「上答大老書 乙亥十二月」에 대한 대원군의 답장이다. 모두 3장의 청나라 시전지(詩箋紙)에 작성되어 있다. 신좌모는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신좌모는 당시 양왜(洋倭)가 침범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척화만언소(斥和萬言疏)」를 올리려고 하였으나, 올리지 못하고 낙향해 있던 상황이었다. 이하응의 정치적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翼宗大王과 大王大妃殿과 관련된 의례에 병 때문에 申佐模가 참석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어 자신이 10년 동안 집권하여 펼친 정치는 암중모색 아닌 것이 없었다고 술회하였다. 또 자신은 본성이 사나워 너무 과도하게 악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오늘 자신이 당한 재앙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였다. 정적들로 인한 위험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늘 조심하는 태도를 견지하였고, 온갖 사람들이 결점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나 자신은 사심이 없어서 흠결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이에 마음이 절로 평안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우뚝하게 자란 어린 손자가 그대로 슬하에 있으니 태평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신좌모에게 자신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 ·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참고자료
원문
(1)申淡人先生文啓 大典禮成 褥儀已擧 盈庭呼嵩 羣情胥悅 此時先生之緣病未遂 其勢然矣 下情悵然 自有觚稜之戀矣 便至 開讀先椷 備承
(2)愛注 藉悉調將得宜 拜審冬候多乖 久時無雪 人病又多 台候無損 區區更溯 下生十年之治 無非瞑行擿埴 本性悍愎 嫉惡太甚 今日之殃 安得不然 日日來客 舟中之敵 隔垣之耳 吹簧之舌 萋斐日盛 跋疐自危 眠以抱虎 食以吞棘
(3)我則無私 雖百口吹毛 少無見疵 於斯天君自安 且稺孫之頭角崢嶸 依依膝下 高言太平而已 望先生勿慮我榮衛如何 獻發在近 更無面書之喜 臨紙冲悵 卽請道安 諸希珍攝 不備 照亮 臘之卄六日 雲下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