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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1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74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4년 11월 1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至月十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8 × 1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갑술년(1874)과 정축년(1877) 사이의 어느 11월 10일에 벼슬에서 물러나 양주 직곡直谷에 은거하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인삼을 보낸다는 간찰이다. 신좌모는 기호 남인畿湖南人으로 흥선대원군의 측근 인물이었다. 일찍이 과거에 합격하기 전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855년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그의 글을 본 중국 명사들이 한유韓愈에 비견할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다. 특히 관각문자館閣文字에 능하여 많은 응제문應製文을 남겼으며, 시는 힘차고 웅혼雄渾하여 성당盛唐에 가까우면서도 한위漢魏를 추구했다고 평가받는다. 1871년에는 그를 비롯한 이의익李宜翼, 이현직李顯稷, 허전許傳 등 친대원군親大院君 성향의 15인이 老人會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그 전에 부친 두통의 편지에 답장을 받지 못해 서운하였는데 인편이 와서 보낸 답장을 받아 읽으니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분수에 따라 먹고 마시며 스스로 편안히 세상을 등지고 눈 위에 누워 무심히 지낸다고 근황을 전했다. 보낸 시와 다소간의 말은 일일이 보았으나 조목에 따라 답장을 쓸 필요는 없으며 할 말은 말 밖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申佐模가 편지에서 언급한 사안에 대해 본 편지에 답하여 노출하지 않고 別紙를 작성하여 답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양주의 인삼은 영위榮衛를 보호할 것이라고 하면서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맺었다. 영위는 혈기를 말한다. 용지는 노란색 바탕에 9행의 세로줄이 있고 여백에 다양한 모습의 복숭아꽃이 인쇄된 시전詩篆에 썼는데, ‘浣花箋紙桃花色’과 松竹齋薜濤箋‘라는 글자가 붉은색으로 찍혀 있어 제작한 곳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澹人集 卷14 書, 「上答大老書 乙亥正月」에 본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인편 확보 등의 문제로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곧 「上答大老書 乙亥正月」은 주로 대원군이 1875년(고종 12) 1월 5일에 작성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원문
間付二椷 未承覆 爲悵 卽於便至 拜讀惠覆 得承愛注 慰感無已 謹審此寒 台候淸鬯 記下隨分飮啄 自安自靖 臥雪無心而已 瓊什與多少示事 一一奉覽 不必逐條作復 言在不言中 此呈三斤椏 爲保尊體矣 必護榮衛 以待好顔相逢 是所區區之望 不須言矣 不備 至月十日 直谷閒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