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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0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6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6년 12월 1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臘月十八
- ㆍ형태정보
-
점수: 3크기: 22.8 × 25.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병자년(1876) 12월 18일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상대방에게 연말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서두에서는 申佐模의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해 주었다. 대원군은 자신의 나이가 60에 가까워 질병이 많고 자신의 부인도 내년이면 이미 육순이라 항상 건강하지 않다고 하였다. 한 달 전에 다행히 次孫을 얻었다고 하였으며, 두 손자가 차례대로 잘 크고 슬하에 있으니 노년이 태평스럽다고 하였다. 게다가 새로 태어난 손자는 조카인 京畿監司(興寧君 李昌應의 아들인 完林君 李載元)의 뒤를 잇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근래 鄭都正이 佐貳에 임명된 소식을 언급하였다. 끝으로 연말 인사를 전하였다.1872년에 참판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로 인해서 대원군은 이 당시 경기도 양주(楊州) 직곡(直谷)에 은거하고 있던 시기이다. 신좌모의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원릉별검(元陵別檢)·성균관전적·병조정랑·종부시정 등을 역임하였고,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849년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사간원사간 등을 지내고, 1855년(철종 6) 진위진향사(進慰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담인집(澹人集)』이 있으며, 이 문집에 이하응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신좌모는 대원군 집권기에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할 정도로 대원군에게 신임을 받았던 친대원군계 근기남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원문
(1)淡人先生道場文丌 此歲已暮無餘 先生居鄕 遽當頷顑 多少生涯 亦有卒歲之資 又有明春安排之算耶 想於先生老境緣業 我獨代悶 向時一圅 於駿八袖中 隨便順呈 間已珠記否 伏惟丙子之尾 文體淸重 渾庇勻吉
(2)區區遠溯 如水無窮 下生年近六十 病多氣殘 室人明年 已滿六旬 恒時不健 白首老夫妻 朝夕對床 自有吁噓咄咄 月前幸得次孫之慶 老境含飴 雙孫頭角 次第崢嶸 依依膝下 高言晩分之太平 且新孫克繼舍侄畿伯之后 從此禰廟 有冢嗣歸正
(3)之喜 私分極幸 近日鄭友都正 投入繁華叢中 快得佐貳之職 以此看之 運路之否與泰 人莫能低昻 呵呵 此歲薄於紗 謀面左矣 並與書候而難期 適得閒逸之暇 玆修丙子探候之禮 藉探新年丁丑之福履 惟希餞迓蔓祉 不備 臘月十八雲下閒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