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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한중리 간찰(韓重履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24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9년 한중리 간찰 / 韓重履 簡札
- ㆍ발급자
-
한중리(韓重履, 1783~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9년 7월 1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酉七月幾望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3 × 3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49년 한중리(韓重履, 1783~1851)가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중리는 자는 공후(公厚),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180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그는 1844년 6월 25일에 연풍현감(延豐縣監)에 임명되었고 1847년 5월 14일에 질병으로 파출되었다. 이후 재임 중 불법적인 일이 암행어사에게 적발되어 조사받는 기사만 보일 뿐 이 간찰 작성 당시의 이력은 보이지 않는다. 간찰의 수신자가 중앙의 고관들과도 연맥이 닿아 관직을 청탁한 모습을 살필 수 있게 하는데, 아마도 강릉의 유력 사족인 삼척심씨 중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이며, 작성 시기로 볼 때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일 가능성이 있다. 먼저 한중리는 철종이 즉위한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기쁜 마음을 적었고, 상대의 편지를 받고 요사이 평안하게 지낸다는 소식에 안도감을 표하였다. 한중리는 객지에서 우울한 상태로 지낸다며 근황을 전하였다. 이어 한중리는 상대가 편지에서 자신에게 청탁한 일에 대해 잘 알았다고 하면서, 김동선(金東選, 1800~?)은 현재 광주판관(廣州判官)으로 나가 있고 김 대감은 한창 산릉(山陵)을 간심(看審)하는 일로 연일 겨를이 없으므로 후일 한가해지기를 기다려 직접 만나 부탁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판관 김동선의 이름을 ‘金東善’이라고 오기하고 있으며, 김 대감은 당시 좌의정으로 있던 김도희(金道喜, 1783~1860)를 가리키는 듯하다. 명숙공종가 소장 간찰 목록에 김도희가 보낸 편지가 4건 있기도 하다. 끝으로 도목정사(都目政事)는 이달 20일 이후에 한다고 하는데 만일 청탁을 넣을 길이 있다면 상대에 대해 힘써 말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의 대부분이 심능규 등 삼척심씨 인물들에게 보내진 것인데, 조옥현 가의 외가가 삼척심씨이므로 어느 시기에 다량의 삼척심씨 소장 문서가 조옥현 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참고자료
원문
國哀慟廓一般而聖嗣御極欣祝何旣前存未謝今又承牘第審伊來靜養動靖連護萬謐慰叶勞祝遠溯無任弟客惱瑣瑣悶人悶人示事謹悉而金東善時在廣判金台方以山陵看審連汨無隙第竢日後閒暇當面託爲計兄家事豈可泛忽也都政今念後爲之云而姑有萬一送言之路則弟於兄豈辭一開口之勞乎餘在續禠不備謝儀己酉七月幾望弟韓重履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