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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윤응규 간찰(尹應圭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8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4년 윤응규 간찰 / 尹應圭 簡札
- ㆍ발급자
-
윤응규(尹應圭, 1800~?,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54년, 윤응규는 1854년 9월 강릉부사에 부임하여 이듬해 1855년 1월 관사에서 사망했다. 간찰의 내용 중 겨울이 시작될 것이라고 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보아, 발급시기는 1854년으로 추정된다.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5 × 4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에 강릉대도호부사 윤응규(尹應圭, 1800~?)가 보낸 간찰이다. 윤응규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여동(汝同)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시 진사 3등 12위로 입격하여 이듬해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주관한 감제시(柑製試)에서 차상(次上)의 성적을 받고 관직에 진출하였다. 1831년(순조 31) 현륭원 참봉을 시작으로 감찰·제천현감·양근군수 등을 역임하다가 1854년(철종 5) 강릉부사가 되었다. 이러한 행적을 미루어 보면 이 간찰은 그가 강릉부사로 재직하던 1854년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간찰의 발신자를 강릉부사 윤응규로 특정한 까닭은 피봉에 날인된 관인 때문이다. 인문(印文)을 살펴보면 ‘江陵大都護府使印’임을 알 수 있는데, 인신등록에 따르면 이것은 1839년(헌종 5)에 주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승정원일기에서 강릉부사를 역임한 사람 중 응규라는 이름을 가진 자를 찾아보면 윤응규 1명만이 확인된다. 간찰의 내용은 아침으로 찬 기운이 있어 곧 겨울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말로 첫인사를 하였다. 아마도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작성된 간찰로 추정된다. 당신이 평안히 잘 지내심을 알게 되니 기쁘고 위안이 된다고 하였고, 곧 마주하여 이야기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신은 산적증(疝積症)을 앓고 있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고, 보내주신 편지는 잘 도착하였으며 이후에 보내주신 편지가 있다면 잘 읽겠다고 하였다. 이어 공무가 바빠 급히 써보낸다고 하며 이만 줄인다는 말로 끝맺었고, 보(袱)는 온전하게 돌려드리지 못한다는 추신을 적었다.
원문
朝寒始行冬令際拜審夜間動止萬衛區區慰寫恰敵合席更討記下疝積一味衝亘寢啖俱減苦悶何喩來軸依到而繼此有可覽者則當奉翫矣公務方殷略謝忙草不備謝上袱不還完耳卽記下應圭拜
拜謝狀上[江陵大都護府使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