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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도희 간찰(金道喜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8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4년 김도희 간찰 / 金道喜 簡札
- ㆍ발급자
-
김도희(金道喜, 1783~1860,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4년 8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午八月初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3 × 4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34년(순조 34) 8월 5일에 기복인(朞服人) 김도희(金道喜, 1783~1860)가 보낸 간찰이다. 김도희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사경(士經), 호는 주하(柱下),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김한정(金漢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태주(金泰柱)이고, 아버지는 판서 김노응(金魯應)이며, 어머니는 이진국(李鎭國)의 딸이다. 삼촌 김노익(金魯翼)에게 입양되었다. 1813년(순조 1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설서·정언 등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호조·형조·예조의 참의를 거쳤다. 그 뒤 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한성부좌윤을 역임하고, 1838년(헌종 4) 판서, 1842년 우의정, 1843년 좌의정에 올랐다. 1845년(헌종 11)에는 흉언죄인(凶言罪人)의 처리와 조선에 온 영국군함의 처리방침 및 죄인을 타도로 정배하는 일을 형조에서 관장하지 못하게 하고, 서원을 함부로 건립하는 것을 금하였다. 1851년 실록총재관이 되어 헌종실록을 편찬하였다. 김도희는 간찰을 작성할 1834년 8월 초까지 이조참판으로 재직하다가 같은 달 15일에 예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간찰은 여름 사이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냈는데 아직 받아보시지 못했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의 편지를 받아 보고 위안이 되었으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걱정이 된다고 하며 어서 낫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공사다망하여 매일을 고민으로 보낸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편지로 말씀해 주신 내용은 자신이 본읍(本邑)에 있다면 답장을 보내겠지만 타읍(他邑)에서는 답장을 작성할 만한 곳이 없기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보내주신 여러 곡식은 잘 받았으니 감사하다고 하였고, 용호(龍湖)에 부의(賻儀)와 언장(唁狀)을 이미 전하였다고 하였다.
원문
夏間惠書卽爲修謝矣尙未入傳云必是浮沈而然也殊歎殊歎卽承仰慰第審愼節豈勝仰慮夏秋之交偸有泄症而善爲將攝遄臻常度是所耿禱朞服人公私擾冗日事惱心悶憐何喩示意備悉矣本邑則修簡以送而他邑則無可裁書之處不能副示諒之如何惠送多種依領情饋感荷卽添龍湖所去賻儀與唁狀已爲傳致耳餘不備謝式甲午八月初五日朞服人道喜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