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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홍운모 간찰(洪運謨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5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홍운모 간찰 / 洪運謨 簡札
- ㆍ발급자
-
홍운모(洪運謨, 1786~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35년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1.5 × 4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1835년 추정) 즉일에 제(弟) 홍운모(洪運謨, 1786~1853)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문에 과거를 언급하고, 발급자와 비슷한 연대로 봐서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로 추정된다. 잠시 상대와의 소식이 막혀 서운하던 차에 금일 편지를 받고 화창한 날씨에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친께서 어제부터 윤감(輪感)이 더쳐 자리에 누워 계셔서 마음 졸이고 있다고 하였다. 이번 과거의 전체 방목[全榜]을 어제야 비로소 보았는데, 성 자형(成姊兄)은 결국 떨어졌다고 했다. 알성시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이는 우선 임금의 처결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혹 설행된다면 상대는 꼭 붙을 것이라고 했다. 조보[朝紙]는 부친이 아직 보지 못해 다음 인편을 기다렸다가 빌려 보내겠다고 했다. 이 간찰은 정확한 발급연도는 알 수 없으나, 본문을 통해 발급자의 부친이 생존해 있을 때이므로 최소한 1835년 이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계속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이어가다가 1834년 여름에 창평현령(昌平縣令)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본문에 알성시 관련하여 ‘서울 측 편지[京書]’를 언급한 것으로 보면 외직으로 나왔을 이 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친 홍희필은 이듬해 1835년 봄에 사망하는데, 본문에서 당시 절기를 봄 날씨로 대변되는 ‘화신(華辰)’으로 표현하였으므로, 발급연도를 1835년 이른 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성 자형’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이 찬한 홍희필의 묘갈명을 통해 포천현감을 지낸 이력이 있는 성근수(成近壽, 1783~?)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치러지던 과거시험의 단편을 실증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홍운모는 자는 미회(眉會), 호는 불매헌(不寐軒), 본관은 풍산(豊山), 부는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1824년에서 1826년까지 강릉부사를 지낸 이력이 있는 홍희필(洪羲弼, 1762~1835)이다. 순조 22년(1822) 식년시 진사 3등에 입격한 뒤 음직으로 혜릉참봉‧창평현령‧형조정랑‧장녕전 영(長寧殿令)‧문천군수(文川郡守)‧양양부사(襄陽府使) 등을 역임했다. 부친이 강릉부사를 역임한 이력이 있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와의 관계가 유추된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壬午式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84] p.73) 金興洛, 『西山集』 卷19 「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知製敎洪公墓碣銘【幷序】」 / 卷20 「通訓大夫襄陽府使洪公墓碣銘【幷序】」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참고자료
원문
乍阻方悵卽拜審花辰兄候萬衛仰慰不任區區弟親候自昨日忽添輪感方此委席情私焦灼如何可言全榜昨始得見而成姊兄畢竟見屈不勝憤憤謁聖云京書亦無聞此是姑無自上發落而然也如或設行則吾兄豈有不觀之理耶好呵好呵朝紙略有下來者而家親尙未入覽故姑俟後便借送計耳餘在更候不備謝卽回弟運謨拜謝
謝上省式拜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