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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김성희 간찰(金成喜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3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8년 김성희 간찰 / 金成喜 簡札
- ㆍ발급자
-
金成喜(記下生 金成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삼척심씨 일가의 인물
- ㆍ발급시기
-
1838년 12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戌臘月卄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0 × 4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正初에 覲行을 가게 되서 만나 뵙지 못할 듯하다는 것을 전하고 상대가 부탁한 종이인 書簡紙, 白紙와 그 남은 돈을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38년 김성희(金成喜)가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이다. 김성희에 대해서는 상고하지 못하였다. 명숙공종가 소장 간찰 목록에 김성희가 보낸 4건의 간찰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같은 해 무술년에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간찰이 있으므로, 그 몰년을 참작하여 무술년을 1838년으로 판단하였다. 해당 간찰의 피봉에 김성희가 자신의 거주에 대해 “峴旅”라고 기재하였는데, 여기서 현은 현산(峴山), 곧 양양(襄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본 간찰의 본문에서도 “接壤之地”, 곧 강릉과 접경인 곳에 자신이 있다고 하였으니, 김성희는 편지 작성 당시 양양에 머물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일기나 각종 관안(官案)에서 그와 관련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므로, 김성희가 관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수신자는 심능규나 다른 삼척심씨 인물 중 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간찰은 부탁받은 지지(紙地) 구입과 관련하여 보낸 것이다.
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의 대부분이 심능규 등 삼척심씨 인물들에게 보내진 것인데, 조옥현 가의 외가가 삼척심씨이므로 어느 시기에 다량의 삼척심씨 소장 문서가 조옥현 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성희는 정초에 근행(覲行)을 할 것이기 때문에 상대와 만나기 쉽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접경지에 있으면서도 편지를 자주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였다. 상대가 부탁한 지지는 양양에서 생산되는 것이기는 하나 종이를 만드는 사찰이 피폐해지고 닥나무가 귀하여 관용(官用)도 얻어 쓸 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의 간절한 부탁에 부응하기 위해 일부 분량인 서간(書簡) 1속(3전 7푼)과 백지(白紙) 2속(4전 4푼)을 구입하여 보내고 그 나머지 돈 69엽도 돌려보내니 계산하여 수령하시라고 하였다.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원문
歲弊雪饕懷仰倍勤謂外獲拜兩度下狀次第披閱慰敵拜唔仍伏審窮冱調體動止神護萬重伏慰區區實愜願言記下生近以身恙一望委席今雖少可蘇完無期歲暮殊鄕離闈情私實難堪抑悶灼何喩正初則又將覲行奉際自此未易臨楮尤覺悵觖回憶前冬數宿之穩心焉耿耿俾也可忘接壤之地一字替申亦此稀闊咎實在我每誦不敏而置閒而不閒無事而有事含意莫遂此亦有生者之所難免奈何奈何敎紙地雖云地産近來寺敗楮貴所謂官用亦無以得用矣如是勤敎之下敢不仰副而無路貿得秪以略干束貿呈庶可黙諒矣書簡一束價三戔七分白紙二束價四戔四分其餘錢六十九葉玆還呈考納如何餘歲除不遠伏冀餞迓百福姑不備伏惟下察上謝書戊戌臘月卄五日記下生金成喜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