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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심낙흥 간찰(沈樂興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7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4년 심낙흥 간찰 / 沈樂興 簡札
- ㆍ발급자
-
심낙흥(沈樂興, 1798~185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4년 11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至月旬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9.5 × 4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854) 11월 12일 종제(宗弟) 심낙흥(沈樂興, 1798~1858)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아들의 혼처 문제로 고민하는 근황을 알리는 것이다.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부주(仁經附註)』를 편찬한 인물이다. 편지에 심능규가 초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고 높은 성적으로 소과(小科)에 급제하기를 축원하며 회시(會試) 종장(終場)까지 결실을 잘 거두길 당부했는데, 심능규는 결국 회시에서 낙방하고 1859년 70세의 나이로 뒤늦게 증광 진사시에 합격한다.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로서 노년의 나이에 이르도록 과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갈망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 혼례와 관련된 심낙흥 집안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는데, 주동(鑄洞) 서영종(徐永宗) 집안이나 파주(坡州) 임천조씨(林川趙氏) 집안 규수를 저울질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서씨 집안 규수는 너무 가난해서 문제고, 임천조씨는 자신의 집이 산골짜기에 있는 것을 꺼린다고 종형에게 속내를 털어놨는데, 혼처를 놓고 경제적인 문제, 지리적 문제 등을 꼼꼼히 따지는 모습에서 혼사를 앞두고 현대인과 크게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문
(皮封)
月圃 經几 執事回敬
鳳西上謝 肅緘
秋圍時竟寂跫音拜慰心劃及接榜眼華啣在中拍案呌奇暮年發解固不足仰賀蓮榜嵬捷預用所顒祝路闊便稀修候尙稽懷𨓏政勤卽玆先施崇牘與陽德俱回三復珍荷雖十朋不易矧伏審至冱道養體內一視萬衛允宗安侍善課溯仰之餘贊賀切切會事只隔三朔能無凡百未備之歎耶吾輩成實莫如終場終場莫如疑心果能老而不倦收拾舊工否宗弟病與歲深伏枕度了悶人悶人月前備送女息鹿車其情緖悵缺想先此所經不言而喩者登楓岳溯鏡浦今承來敎固所宿願又况所懷伊人在水一方者乎昭陽禊帖後叙草全不成語然其懷感自有見焉今玆胎呈斤正是等之明春柳花之節萬望宗兄以靑衫返旆時弟當以白髮隨後矣重成四老會於昭陽之上仍作二老歸於東海之濱如何如何東錫近日讀書於趙士用宅而昏事此鄕有入聞無合意鑄洞徐永宗向與迷兒有數處送言抱川徐羅州家卽耆老科徐令應淳至親其云云已久計應關聽但壽卿家以其家甚貧爲言奈何坡州僑居林川趙氏故大憲明曾孫卽徐永宗室內之從姪亦我子婦之族人其家不貧閨秀絶等年今十五父母俱存以郞家在峽爲嫌云明年春夏似當過行於非趙則徐耳一貼山果三種海魚之惠饋認出腆眷依領僕僕不知攸謝也此歲只是月餘更難嗣音於遠外尤庸悵黯力疾呼倩姑不備伏冀餞迓萬祉甲寅至月旬二日宗弟樂興拜拜新蓂只以所得二件半簡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