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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홍영섭 간찰(洪永燮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27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23년 홍영섭 간찰 / 洪永燮 簡札
- ㆍ발급자
-
홍영섭(洪永燮,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23년 2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未二月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5 × 3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안부를 묻고 말씀하신 내용은 4월 중에 처리하겠다는 내용의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계미년(1823) 2월 12일에 홍영섭(洪永燮, ?~?)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 자신을 ‘弟’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피봉에서 상대의 거주 또는 택호로 ‘鏡湖’를 적었고, 자신의 거처로 ‘義洞’을 적고 있다. ‘경호’는 현 강릉시 저동(苧洞) 일대로 현재 이곳 경내에 경호정‧경포대 등이 남아있다. ‘의동’은 현 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 일대에 있었던 어의동(於義洞)으로 보인다. 본문 내용 가운데 경과가 4월 10일로 퇴정되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정황상 순조 23년(1823) ‘왕세자 진후(疹候) 평복(平復)’ 경과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관해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순조 22년(1822) 12월 22일 예조에서 왕세자진후평복 경과 정시를 다음 해로 퇴행하자는 의견을 아뢰자 3월 중으로 택하여 들이라는 전교가 있었다. 그 뒤 순조 23년(1823) 1월 23일에 다시 예조에서 무과 초시 및 혼궁(魂宮)의 졸곡(卒哭) 일자와 상치한다는 등의 사유로 3월 21일로 정해진 경과 문무과 정시를 퇴정하기를 청했고, 다시 일관(日官)에게 물어 4월 10일이 길일로 나왔으므로 이때로 퇴정하길 아뢰자 윤허한다는 전교를 내렸다. 『실록』의 4월 10일 기사에서도 ‘경과 정시가 문과는 춘당대에서 설행되었다’고 나와 있으므로, 이러한 정황으로 보면 이 편지의 발급연도인 계미년을 1823년으로 추정 가능하다. 경과 설행 일자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본쉬(本倅, 강릉부사로 추정)를 염문할 수 없다거나 상대를 위해 힘을 써 주지 못한다는 등의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면 수급자는 경관직에 재임 중인 발급자에게 모종의 청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의 일상이나 관행 등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홍영섭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본문에서 스스로 ‘서울에 있다[在洛如弟]’고 한 정황, 순조 29년(1829) 공청도 암행어사 홍원모(洪遠謨)의 서계에 ‘목천현감(木川縣監) 홍영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면 주로 순조 대 사환했던 인물로 보인다.
상대와 소식이 막힌 뒤로 어느덧 새해가 지났는데도 산천과 풍설에 막혀 만 리나 떨어진 형편이 아득하기만 했는데, 홀연히 상대의 편지를 받으니 마치 대면하고 있는듯 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의 일상생활이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더욱 위로된다고 하였다. 상대의 편지를 받은 뒤 주위를 둘러보고는 사뭇 재양(載陽, 봄)의 기후임을 알게 되었으니, 이러한 때에 상대의 제절(諸節)은 다시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어리석은 옛 모습 그대로 지내고 있으면서 단지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고 하였다. 경과(慶科)가 4월 10일로 물려지게 되었지만 서로 만날 날이 머지않았으니 매우 기대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본관 수령에게 빙문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서울에 있으면서도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처지에 거듭 혀만 차며 탄식한다고 하였다.
- · 『純祖實錄』 卷26 <純祖 23年(1823) 4月 10日 등 기사>
- · 『承政院日記』 <純祖 22年(1822) 12月 22日/ 純祖 23年(1823) 1월 23日 등 기사>
참고자료
원문
阻候居然獻發山川風雪邈然有萬里之勢悵仰良深忽承手敎怳若對討況審動止一衛尤何等慰荷信後匝望殊知載陽之候未審諸節更如何弟依舊憒伏祗添一齒而已無足奉聞慶科退在四月十日奉際不遠深用企仰本倅無可憑問奈何奈何在洛如弟者誠無足爲力矣重用咄歎耳立促萬忙胡草不備謝式
癸未二月十二日弟永燮拜
鏡湖靜案回納義洞洪友謝書省式謹封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