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1854년 윤응규 간찰(尹應圭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2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4년 윤응규 간찰 / 尹應圭 簡札
- ㆍ발급자
-
윤응규(尹應圭, 1800~1855,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54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1 × 40.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1854년 추정) 즉일에 윤응규(尹應圭, 1800~1855)가 안부를 주고받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지난번 상대를 뵌 뒤로 아직 남은 향기가 있는데, 금일에 또 편지를 받아 잘 지낸다는 점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치혈(痔血)이 멎지 않아 날이 갈수록 기운을 떨치지 못해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상대가 서울 소식을 알려주어 오랫동안 외부 소식을 듣지 못하던 차에 감사하지만 놀라고 슬픈 일이 많으니 탄식스럽다고 했다. 그 외의 기별은 아직 이른 것은 없지만 온다면 당연히 받들어 읽어보겠다고 하였다. 감영에 보고할 성책은 전달의 지속(遲速) 여부를 알 수 없지만 다음 달 보름에서 20일 사이 쯤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발급자 윤응규는 자는 여동(汝同), 본관은 파평(坡平), 부는 윤광호(尹光濩)이다. 1827년 소과 증광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한 뒤 음관으로 현륭원 참봉 등을 역임했고, 1854년 9월 강릉부사에 부임하여 이듬해 1855년 1월 관사에서 사망했다. 본문의 ‘(강원)감영에 보고할 성책’에 관한 언급 등으로 발급자를 강릉부사 재직 당시의 윤응규로 추정하였다. 여기에서 이른바 ‘성책’은 감영 관할 고을의 수령이 재해, 호구, 조세 등 보고해야 할 사항을 작성하여 공문과 함께 감영에 올리던 문서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 간찰의 작성 연대를 윤응규가 강릉부사 재직 당시인 1854년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된 ‘서울 소식[京耗]’은 여타 정황상 난지(爛紙, 朝報)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때에 따라서 상대가 보내준 편지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된 ‘놀라고 슬픈[驚衋]’ 일은 1854년 4월경 러시아 배가 함경도에 출몰하여 영흥‧덕원 고을 백성을 살상한 사건, 7월~8월 사이 전라‧충청‧경상도 지역에 홍수가 나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 등을 지칭할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간찰은 경관직에 종사하는 관원과 지방 관원 간에 각종 정보를 주고받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고, 고을 관에서 보영성책(報營成冊)을 작성하여 감영에 행문하는 과정 등을 단편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 · 『哲宗實錄』 卷6 <哲宗 5年(1854) 4月 27日/ 7月‧8月 기사>
참고자료
원문
向枉席上尙有餘香卽又拜審日來動止連衛慰寫尤深記下痔血不止日益澌頓良苦良苦京耗玆此錄示幸破久聾殊感而繼有驚衋者多可歎外奇姑不來到來當奉覽矣報營之成冊轉達遲速雖未可知要在來月望念間耳餘留擾甚畧謝不備卽回記下應圭拜
謹拜謝上[着圖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