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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이봉구 교첩(李鳳九 敎牒)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1074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교첩(敎牒)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9년 이봉구 교첩 / 李鳳九 敎牒
- ㆍ발급자
-
헌종(憲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봉구(李鳳九, 1802~1868,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9년 4월 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十九年四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2.1 × 75.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헌종(憲宗) 5년(1839) 4월 3일에 진사 이봉구(進士 李鳳九)를 장사랑 예빈시 참봉(將仕郎 禮賓寺 參奉)로 임명한 교첩(敎牒)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이 문서는 1839년(道光19년) 4월 3일에 이조(吏曹)에서 헌종(憲宗)의 재가를 받아 진사 이봉구(進士 李鳳九)를 장사랑 예빈시 참봉(將仕郎 禮賓寺 參奉)으로 임명한 교첩(敎牒)이다. 이봉구((李鳳九, 1802~1868)는 본관이 전주(全州)로, 호는 산석거사(山石居士)이다. 아버지는 이후(李垕)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과 청안현감(淸安縣監)·통천군수를 지냈다. 방해정은 1859년(철종 10)에 강릉시 운정동 강릉 선교장(江陵船橋莊)의 주인이자 통천군수(通川郡守)였던 이봉구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선교장의 별서 건물로 지었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다.
장사랑(將仕郞)은 조선시대 종구품(從九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예빈시(禮賓寺)는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에 사신의 접대와 종재(宗宰)에게 공급하는 식사 등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참봉(參奉)은 조선시대 있었던 종9품 벼슬이다. 원(園) 능전(陵殿) 예빈시(禮賓寺)등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관직이다.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맨 좌측에 작은 글씨로, 이 교첩에 관련된 행판서 신 조 서압(行判書 臣 趙 署押) 참판(參判) 참의(參議) 정랑(正郎) 좌랑(佐郞)이라고 적혀 있다.
A003_01_A01074_001_002
이 문서는 이조 서리(吏曹 書吏) 안원묵(安元黙)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
원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