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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이봉구 관교(李鳳九 官敎)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1064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교령류-관교(官敎)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3년 이봉구 관교 / 李鳳九 官敎
- ㆍ발급자
-
헌종(憲宗)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봉구(李鳳九, 1802~1868,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3년 6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二十三年六月二十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5 × 75.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헌종(憲宗) 9년(1843) 6월 25일에 이봉구(李鳳九)를 중훈대부 행전생서 직장(中訓大夫 行典牲署 直長)로 임명한 관교(官敎)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이 문서는 1843년(道光23년) 6월 25일에 이봉구(李鳳九)를 중훈대부 행전생서 직장(中訓大夫 行典牲署 直長)로 임명한 관교(官敎)이다. 이봉구((李鳳九, 1802~1868)는 본관이 전주(全州)로, 호는 산석거사(山石居士)이다. 아버지는 이후(李垕)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과 청안현감(淸安縣監)·통천군수를 지냈다. 방해정은 1859년(철종 10)에 강릉시 운정동 강릉 선교장(江陵船橋莊)의 주인이자 통천군수(通川郡守)였던 이봉구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선교장의 별서 건물로 지었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다.
중훈대부(中訓大夫)는 조선시대 문신 종3품 하계(下階)의 품계명이다. 종3품 상계는 중직대부(中直大夫), 하계는 중훈대부(中訓大夫)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전생서(典牲署)는 조선시대 나라의 제향에 쓸 양ㆍ돼지 따위를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이다. 세조 6년(1460)에 전구서를 고친 것으로, 고종 31년(1894)에 없앴다. 직장(直長)은 조선시대 각 관아에 두었던 종7품 관직, 주로 궁궐 내의 재정·물품 담당 아문에 배치되어 전곡·비품 등의 출납 실무를 담당하였다.
행(行)은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A003_01_A01064_001_002
이 문서는 이조 서리(吏曹 書吏) 안원묵(安元黙)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
원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