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1008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첩관통보류-보고(報告)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96년 헌릉령 보고 / 獻陵令 報告
- ㆍ발급자
-
이상우(李相宇, 186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96년 2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開國五百五年建陽二月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5.8 × 39.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96년 獻陵令이 無名亂類輩가 齋室에 돌입한 사실을 報告한 문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894년(고종 31) 헌릉의 능관 중 능령이 작성한 보고이다. 보고에 따르면 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뢰배들이 재실에 들이닥쳐서 수직하고 있었던 참봉을 쫓아낸 일이 발생했는데, 헌릉 령이 주변 백성들에게 물어도 누구인지 찾을 수 없었고, 이와 관련하여 보고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왕릉은 예조禮曹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이 보고문은 헌릉 령이 예조로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문을 작성한 사람은 이상우李相宇(1869~?)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기록을 보면 이상우는 여러 왕릉의 능관으로 재직했다. 이상우는 1894년 7월 처음 온릉溫陵 참봉에 있었는데, 같은 해 식년 사마시에 입격한 이후 관직을 제수받은 것으로 보인다. 방목榜目에 거주지를 강릉으로 기재하였으며, 아버지와 생부, 형제들의 이름을 병기했다. 아버지는 공조 좌랑을 지낸 이회원(李會源), 생부는 이회연(李會淵)이며, 생가 동생으로는 이근우(李根宇)와 이명우(李榠宇)가 기재되었다. 이상우는 온릉 참봉 이후 창릉昌陵 참봉과 효창원孝昌園 봉사를 거쳐 1895년 헌릉 령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이 보고문은 이상우가 현릉에 재직할 당시 작성된 것이다. 해당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다른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아 사건의 결론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상우가 작성한 보고문은 국한문 혼용체로 꾸며져서 우리나라 근대 문서식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 잘 드러난다. 보고문 말미에는 ‘헌릉관관방인獻陵關防印’이 날인되어 있다. 이는 헌릉에서 능관들이 공식문서를 생산하고 그 효력을 증명하기 위해 찍은 인장이다. 이상우의 보고서에 날인된 인장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