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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 사비 초정 소지(私婢 草正 所志)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798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소지(所志)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8년 사비 초정 소지 / 私婢 草正 所志
- ㆍ발급자
-
사비 초정(私婢 草正)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릉부사(江陵府使)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8년 7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寅七月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2.6 × 27.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58년(영조 34) 7월에 사비 초정(草正, =初正)이 양선만의 불망기 내용을 입지해 줄 것을 강릉부에 청원한 소지로, 관에 접수하지 않은 백문기(白文記)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58년(영조 34) 7월에 사비 초정(草正, =初正)이 양선만의 불망기 내용을 입지해 줄 것을 강릉부에 청원한 소지로, 관에 접수하지 않은 백문기(白文記)이다. ‘A003_01_A00766_001’ 등의 관련문서를 통해 초정은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의 여종임을 알 수 있다.
초정은 매우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이 유리걸식하던 사람으로 1756년 대기근 때 열흘 동안 부모가 모두 굶어 죽었다. 어린 나이의 그녀는 걸식하려던 차에 이 내번댁에 의탁하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3월 즈음에 그녀의 시양4촌 양선만(梁善萬)이 찾아와 ‘네 부친의 백골번포를 2년 동안 나 혼자 부담했을 뿐 아니라 올해 번포를 급박하게 독촉받고 있으나 납부할 길이 전혀 없어서 감옥살이를 하려고 한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하지만 초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번포를 분담할 길이 없어 이 내번댁에 자신을 팔고 몸값으로 15냥을 받은 뒤에 망부의 2년 번포값과 올해 번포값을 모두 양선만에게 지급하고 양선만이 작성해 준 수기(手記, 不忘記)를 받았다. 그 수기에는 ‘이후로 네 망부의 번포에 대해 다시는 침탈할 일이 없게 하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에 초정은 위 양선만의 불망기를 본 소지에 점련하여 나중에 증빙자료로 삼기 위하여 불망기 내용에 대한 입지를 발급해 줄 것을 강릉대도호부에 청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지는 어떤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강릉부에 올리지는 않았으며, ‘A003_01_A00803_001’을 통해 양선만 또한 이 뒤로 굶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003_01_A00803_001’은 1761년 4월에 초정이 다른 사연으로 강릉부에 올린 원정으로, 그녀가 자매한 시기가 본 소지와 달리 양선만이 죽은 뒤라고 하였으나 전체적인 내용이 동일하여 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또한 초정의 위 사건과 관련하여 1763년(영조) 8월에 이내번의 종 경산이 강릉 대도호부사에게 올린 ‘A003_01_A00780_001’이 있다.
본 소지에서 이내번을 ‘경호생원댁(鏡湖生員宅)’으로 언급한 것은 당시 이내번의 거주지가 부북면(府北面) 가남(嘉南) 경호리(鏡湖里)였기 때문이다. 본 소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양선만불망기(梁善萬不忘記)’는 1758년 3월 27일 ‘A003_01_A00676_001’과 동년 10월 16일 ‘A003_01_A00766_001’ 2건이 존재한다. 이 2건의 내용은 자매가(自賣價)가 10냥과 15냥으로 금액이 다르게 표기된 것 외에는 대동소이하다. 불망기는 다짐 또는 맹세의 내용을 적은 증서로, 수기(手記), 수표(手標)와 동일한 성격의 문서이다. 따라서 본 소지에 수기와 불망기를 혼용해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소지와 위의 관련문서는 대기근을 겪던 당시 초정과 같은 민초들의 비참했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자 입지의 활용범위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이다.
원문
加南居私婢草正[左寸] 右謹陳所志矣段 矣身至貧 無依焉乞之人 上上殺年一旬之內 父母盡爲飢死是白遣 年穉矣女行乞圖爲次 付托鏡湖生員宅矣 去三月分 矣女侍養四寸梁善萬來到曰 汝矣父年年白骨番布 吾獨自擔當兺不喩 今年番布督如星火 而吾無備納之路爲白遣 意欲牢獄是白去乙 百以思之 他無分錢周旋之路 故矣身身乙 自賣於李生員宅 折價錢文拾伍兩捧上後 矣父年年番錢及今年頉下例定價 幷許給於養四寸梁善萬處 而捧手記是乎矣 此後矣父番布段 俾無日後更侵之事 成手記是乎等以 同梁善萬不忘記帖連仰訴爲白去乎 後考次立指【旨】成給事 千萬望良只爲 行下向敎是事 大都護處分 戊寅七月日 所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