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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 양선만 불망기(梁先萬 不忘記)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766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불망기(不忘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8년 양선만 불망기 / 梁先萬 不忘記
- ㆍ발급자
-
양선만(梁先萬)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양초정(梁初正)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8년 10월 1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寅十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8 × 32.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58년(영조 34) 10월 16일에 양지만(梁支萬)이 자매(自賣)한 양사촌매(養四寸妹) 초정(初正=草正)에게 몸값의 용도를 밝히면서 발급해 준 불망기(不忘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58년(영조 34) 10월 16일에 양지만(梁支萬)이 자매(自賣)한 양사촌매(養四寸妹) 초정(初正=草正)에게 몸값의 용도를 밝히면서 발급해 준 불망기(不忘記)이다.
초정의 시양사촌 오빠인 양지만은 1756년 대기근에 죽은 초정 부친의 백골징포(白骨徵布)를 2년 동안 홀로 납부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경산(京山)의 상전인 이 씨에게 초정을 팔고 몸값으로 15냥을 받았다. 이 15냥 중에 9냥 5전은 양선만이 가지고 가서 백골징포를 부담하여 충당하고, 1냥은 초정의 외5촌 숙부인 김삼룡(金三龍)이 가지고 가며, 나머지 4냥은 초정 부모의 무덤을 만들 때 군정을 소모하는 비용으로 쓰기 위해 초정에게 남겨 두기로 다짐하였다. 문서말미에 ‘나중에 잡담이 있게 되면 이 불망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 잡을 것’이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다짐 당사자인 양지만과 김삼룡이 착명으로 서명하였다. 불망기는 다짐 또는 맹세의 내용을 적은 증서로, 수기(手記), 수표(手標)와 동일한 성격의 문서이다. 본 불망기의 관련문서로 추정되는 계미년 8월 정동에 사는 이 씨의 종 경산(京山)이 올린 소지 ‘A003_01_A00780_001’을 통해 본 불망기에서 언급한 ‘우인전(右人前)’은 종 경산의 상전인 이 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 소지에서 언급한 (시)양4촌은 ‘양선만(梁善萬=梁先萬)’이고, 몸값은 15냥이 아닌 ‘13냥’이라고 하였으나 또다른 관련문서인 ‘A003_01_A00798_001’ 에 ‘시양사촌양선만(侍養四寸梁善萬)’과 ‘15냥’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위의 양지만(梁支萬)의 ‘支’는 ‘善’과 발음이 같은 ‘先’의 오자로 추정된다. 또한 위 소지의 내용에 의하여 본 불망기의 발급년인 무인년은 1758년이고, 경산의 상전 이 씨는 정산의 상전 이내번(李乃蕃, 1703~1781)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삼정(三政)의 문란 중 하나인 군정(軍政)의 백골징포(白骨徵布)의 일상화와 이에 대한 폐해 사례로, 백골징포가 직계가족이 아닌 족징(族徵)에 부과된 경우에 납세를 위해 활용하였던 한 방편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원문
養四寸妹初正前不忘記 右不忘記爲 汝矣亡父白骨番布 年年吾獨自徵納 豈不冤枉哉 不得已汝矣身乙 右人前 錢文拾伍兩 依數捧上後 玖兩伍戔段 吾之去 而汝之父白骨番布擔當 改充定是遣 壹兩錢段 汝矣外五寸叔金三龍持去是遣 其餘肆兩段 汝之父母掩土時 耗軍次 留置於汝矣處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 持此不忘記 告官卞正 印 不忘記主梁先萬[着名]金三龍[着名] 戊寅十月十六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