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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431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4년 김명숙 논 매매 문기 / 金明叔 畓賣買文記
- ㆍ발급자
-
김명숙(金明叔)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진사댁노 성로(李進士宅奴聖魯)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4년 12월 2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貳拾肆年 甲辰十二月卄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4.5 × 3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4년(헌종 10) 김명숙이 이진사댁노 성로에게 주숙(注椒)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논 매매 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국학진흥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844년(헌종 10) 김명숙이 이진사댁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논 매매 문기이다. 1844년(헌종 10) 12월 27일에 이진사댁의 노 성로(聖魯)는 상전을 대신하여 김명숙(金明叔)에게 논 20마지기를 팔면서 이 매매 문기를 확보했다. 김명숙이 논을 파는 사연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다는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주숙(注椒)에 있는 20마지기를 전문 30냥으로 값을 흥정하고 이 매매를 완성했다. 그리고 완전한 매매를 인정하면서 그가 이전에 이 땅을 사면서 확보했던 문기, 즉 본문기 1장도 함께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을 비롯하여 이 땅과 관련하여 이해가 있는 사람이 잡담(雜談), 즉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기로 증명하라는 단서도 적었다. 문서 작성은 증인으로 참여한 김창주(金昌柱)가 담당했다. 매득자 이진사댁은, 강릉 전주이씨 선교장이다. 즉, 노 성로가 이진사댁을 대신하여 매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민 이상의 사회적 신분으로 보이는 김명숙이 성로에 개해 ‘∼전(前)’이라고 높인 것은 당시 매매의 관행이거나 이진사댁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엄격히 본다면, 사노에 대해 ‘∼처(處)’라고 적어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다른 지역의 매매 문기의 일반적인 기술 방식이다. 그리고 이 문기에는 매매 대상 토지의 사방 경계인 사표는 아니지만 특징적인 내용을 부기하였다. 그것은 북쪽으로 양안의 기재한 토지의 크기와 등품을 밝힌 내용이다. 이를 통해 정확한 매매 대상 토지를 밝히고 이후의 분쟁을 최소화 하려는 표현이었다. 이런 내용은 매득자에서 요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토지를 매득한 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기 상단의 부기이다. 이 필체는 문기 본문과 다르기에 매득 후 작성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부기의 내용은 사표로서 동서남북의 소유자를 적고 있다. 이런 모습은 엄격한 매득 토지의 확보와 관리의 흔적이다. 이 매매 문기는 19세기 중엽 강릉지역의 논 매매 문기의 특징을 보여주면서 전주이씨 가문의 토지 매득과 관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제목 없음
道光貳拾肆年 甲辰十二月卄七日李進士宅奴聖魯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吾以要用所致買得畓伏在於注椒白草員
七十四o畓拾卜五束二十斗落只庫乙決價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
北犯六等句 長一百三十五尺 廣二十四尺
遣本文記一張並以自明年爲始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如
有雜談則持此文記告 官卞正印
畓主金明叔(署押)
證筆金昌柱(署押)
(頭註) 此畓四標則 東富命畓 西已龍田 南吉男致畓 並萬昌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