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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394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3년 김인철 명문 / 金仁喆 明文
- ㆍ발급자
-
김인철(金仁喆)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 노 대성(李 奴 大成)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3년 6월 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拾參年壬辰六月初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8.4 × 39.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32년(순조 32) 6월 2일에 양인 김인철(金仁喆)이 이 씨 종 대성(大成)에게 40냥을 받고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32년(순조 32) 6월 2일에 양인 김인철(金仁喆)이 이 씨 종 대성(大成)에게 40냥을 받고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이다. 본 명문의 작성년도는 ‘도광십삼년임진(道光拾參年壬辰)’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도광 13년은 임진년이 아닌 계사년 1833년이고, 임진년은 도광 12년인 1832년이다. 이와 같이 간지년과 연호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간지년이 실제 문서의 작성년도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일상생활과 밀착된 간지년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명문의 작성년도 ‘도광 13년 임진’은 ‘도광 12년 임진’의 오기(誤記)로 추정하여 1832년으로 상정하였다. 본문에서 언급한 ‘본문기’는 1827년 2월 12일에 심승조(沈承祖)가 김종해(金宗海)에게 40냥을 받고 위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A003_01_A00392_001’과 심 씨 종 감덕(甘德)이 이원삼(李元衫)에게 발급해 준 ‘A003_01_A00393_001’이다. 따라서 1827년 위 논값 40냥이 5년 뒤인 1832년에도 동일한 값으로 거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인철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매입했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도하는 논의 위치는 일미노리(一美老里)에 있는 도자(道字) 자호의 79번이며, 논의 면적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6짐9뭇이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1섬5마지기이다. 김인철은 매매가로 40냥을 받고 위 논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본문기와 함께 올해부터 영구히 매도하였다. 본문에 매수자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실제 매수자는 대성의 상전인 이 씨로 추정된다. 문서 말미에 ‘나중에 양쪽 자손과 족친 중에서 허튼소리를 한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논주인 김인철과 이 거래의 증인이자 본 문서 작성자인 필집양인 이삼돌(李三乭)이 각각 착명으로 서명하였다.
원문
道光拾參年壬辰六月初二日 李奴大成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 吾亦要用所致 買得畓伏在於一美老里 道字七十九畓 陸卜玖束壹石伍斗落只庫乙 折價錢文肆拾兩 依數捧上是遣 自今年爲始 永永放賣爲乎矣 本文記幷以許給爲去乎 日後良中 彼此子孫族類中 雜談是去等 持此文記 告官卞正印 畓主良人金仁喆[着名] 證筆執良人李三乭[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