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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390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3년 홍산춘 논 매매 문기 / 洪山春 畓賣買文記
- ㆍ발급자
-
홍산춘(洪山春)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 노 성로(李 奴 性魯)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3년 11월 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初二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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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61.2 × 73.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3년(헌종 9) 11월 2일에 홍산춘(洪山春)이 이 진사댁 종 성로(性魯)에게 300냥을 받고 다섯 곳의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843년(헌종 9) 11월 2일에 홍산춘(洪山春)이 이 진사댁 종 성로(性魯)에게 300냥을 받고 다섯 곳의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이다. 수급자 종 성로는 1834년 이용구 준호구 ‘A003_01_A00180_001’ 등의 선교장 준호구 ‘노비질(奴婢秩)’에 ‘비 득녀의 3소생 노 성로 병인생[婢得女三生奴性魯年丙寅(1806?)]’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성로의 상전 이 진사댁은 이용구(李龍九, 1798~1837)의 맏아들인 이회숙(李會淑, 1823~1876)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한 ‘본문기 6장’ 중 1장은 1833년 2월 6일에 이 진사댁 종 쇠노미가 470냥을 받고 홍원강(洪元康)에게 위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A003_01_A00389_001’이다. 그리고 ‘구배지 2’장은 병진년 4일에 북평 신생원이 차노 원태(元太)에게 위의 논 중 10번과 14번의 매도행위를 위임한 ‘A003_01_A00758_001’과 1833년 2월 6일에 상전이 쇠노미에게 위 논의 매도행위를 위임한 ‘A003_01_A00727_001’이다. 따라서 1833년 선교장에서 470냥을 받고 매도했던 위 논을 10년 뒤에 재매입했으며, 논값은 오히려 170냥이 하락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산춘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논 다섯 곳을 팔게 하였다. 매도하는 직무(直畝, 현 강릉시 운정동 海雲亭 앞 들판)에 있는 조자(鳥字) 자호의 10번 13짐4뭇, 14번 20짐, 9분번(分番) 22짐2뭇 내 17짐2뭇, 냇물에 뒤덮혀 쓸려 내려간 천번(川反) 실제 5짐, 15번 12짐5뭇으로 총 68짐1뭇이나 문서에는 50짐9뭇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두락수로는 총 5섬지기이다. 홍산준은 매매가로 300냥을 받고 논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본문기 6장과 구배지[舊牌旨] 2장을 위의 논과 함께 금년부터 영구히 매도하였는데, 매수자에 대해 ‘우댁전(右宅前)’으로 지칭하고 있어 위 논의 매입자는 성로가 아닌 그의 상전인 이 진사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서 말미에 ‘나중에 허튼소리를 한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논주인 홍산춘과 함께 이 거래의 증인으로 참여한 양인 박취대(朴取大)와 본 문서의 작성자인 필집 안치형(安致衡)이 각각 착명으로 서명하였다.
제목 없음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初二日 李進士宅奴性魯前明文 右明文事段 吾以要用所致 直畝鳥字十畓拾參負肆束 十四畓貳拾負 九分畓貳拾貳負貳束內拾柒負貳束 川反下實伍負 十五畓拾貳負伍束 合伍拾負玖束伍石落只廤乙 右宅前 折價錢文參佰兩 依數捧上是遣 自今年爲始 永永放賣爲乎矣 本文記陸張舊牌旨二張 竝爲許給爲去乎 日後良中 如有雜談是去等 持此文 告官卞正印 畓主洪山春[着名] 執筆安致衡[着名] 證人良人朴取大[着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