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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이유승 간찰(李裕承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185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3년 이유승 간찰 / 李裕承 簡札
- ㆍ발급자
-
이유승(李裕承, 183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3년 7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酉 七月 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49.6 × 57.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계유년(1873) 7월 5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유년(1873) 7월 5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면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동일 발급자로 보이는 여타 소장간찰을 참고하면 수신자 측으로 피봉에 ‘선교(船橋)’가 기록된 문건이 있으므로, 수신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선교장(船橋莊) 측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번 을미년(1895) 윤5월 9일 발급 간찰의 경우 수신자 정보로 피봉에 ‘강릉정각(江陵政閣)’이 기록되어 있는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895년 윤5월의 경우 이위(李暐, 1839~1914)가 강릉부 관찰사(江陵府觀察使)에 재직 중이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는 본관이 ‘덕수(德水)’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인은 강릉부 내의 별도의 직임 또는 강릉 향청의 좌수와 같은 직임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간찰의 정보만으로는 미상이다. 별도의 피봉은 없고, 배접되어 가운데가 접힌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간첩(簡帖)으로 후 가공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본부(本府) 색리(色吏) 편에 부친 편지는 그간 받아보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을비가 자주 내리는 괴상한 날씨에 상대와 격조한 회포가 더욱 간절하던 차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요즘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주관하는 일은 여전하여 아마도 걱정되고 분주함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근황으로, 어버이와 가솔들 모두 편안하지만 자신은 먹지 못하는 증세가 요즘 다시 심해져 기운 없이 쓰러져 지낸다고 하였다. 오는 그믐에 상대가 돌아오는지 묻고는 미리 기대된다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해삼(海蔘)은 병든 위장에 보탬이 될 만하다고 하면서, 생복(生鰒)은 아직 철이 아니니 서늘해 진 뒤에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발급자 이유승은 자는 경선(景先),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이계선(李啓善)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9대손이며, 독립운동가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의 부친이다. 1864년(고종1)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한 뒤 한성판윤‧이조판서‧우찬성‧중추원일등의관‧궁내부특진관‧태의원경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때 반대 상소를 올렸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 · 『승정원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원문
向於本府色吏便 付候矣 間似入覽也 秋雨頻繁 大是乖宜 此時阻仰 益切耿耿 卽承審比來 候上連護晏重 區區昻喜叶祝 所幹尙未出末 想多惱擾之端 旋庸貢念之至 記下 省率一安 而阻食之證 近復益甚 澌頓無餘 日事涔涔 悶憐悶憐 來晦果以回馭爲定耶 預切企待耳 海蔘可補病胃 仰感仰感 生鰒今非其時 幸待凉後惠之 申望申望 餘姑不備謝禮 癸酉 七月 五日 記下 裕承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