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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이유승 간찰(李裕承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184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89년 이유승 간찰 / 李裕承 簡札
- ㆍ발급자
-
이유승(李裕承, 183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89년 4월 2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丑 四月 卄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48.4 × 57.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기축년(1889) 4월 20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기축년(1889) 4월 20일에 기하(記下) 이유승(李裕承, 1835~?)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면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본문에는 발급자의 성명에 ‘승(承)’만 기록하였으나 동일 발급자로 보이는 여타 소장간찰을 참고하면 인명이 ‘유승(裕承)’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간찰들 가운데 수신자 측으로 피봉에 ‘선교(船橋)’가 기록된 문건이 있으므로, 소장 문중을 감안하면 수신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선교장(船橋莊) 측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번 을미년(1895) 윤5월 9일 발급 간찰의 경우 수신자 정보로 피봉에 ‘강릉정각(江陵政閣)’이 기록되어 있는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895년 윤5월의 경우 이위(李暐, 1839~1914)가 강릉부 관찰사(江陵府觀察使)에 재직 중이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는 본관이 ‘덕수(德水)’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인은 강릉부 내의 별도의 직임 또는 강릉 향청의 좌수와 같은 직임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간찰의 정보만으로는 미상이다. 별도의 피봉은 없고, 배접되어 가운데가 접힌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간첩(簡帖)으로 후 가공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별한 회포가 오랠수록 더욱 암담해진다고 하면서, 요즘 상대가 집으로 잘 돌아가 편안히 지내고 있고, 가족들의 안부도 고루 좋은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이전 모습대로 지내고 있고, 여러 가솔들도 한결같이 편안하니 이것이 다행 될 뿐이라고 했다. 이제 착수한 상대 집안의 역사(役事)에 관한 일은 거창(巨創)하여 근심되는 점은 없는지 묻고는 빨리 마무리 짓고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발급자 이유승은 자는 경선(景先),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이계선(李啓善)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9대손이며, 독립운동가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의 부친이다. 1864년(고종1)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한 뒤 한성판윤‧이조판서‧우찬성‧중추원일등의관‧궁내부특진관‧태의원경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때 반대 상소를 올렸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 · 『승정원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원문
別懷久益悵黯 比來候上還第護晏 寶眷均宜 想惟瞻餘欣滿 區區溸頌之至 記下 依是前日樣 而諸率一安 以是爲幸耳 家役始之 毋至巨創爲惱乎 幸須速速了勘而回馭 如何 餘還聞便略候 不備 己丑 四月 卄日 記下 承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