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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67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29년 김진우 간찰 / 金振宇 簡札
- ㆍ발급자
-
김진우(金振宇, 1883~195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김근우(李根宇, 1877~193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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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 평양수취지역 서울 재동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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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3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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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4.5 × 17.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문서는 1929년 3월 15일에 김진우(金振宇, 1883~1950)가 이근우(李根宇, 1877~1938)에게 보낸 편지와 한시 3수가 담긴 자료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서는 1929년 3월 15일에 김진우(金振宇, 1883~1950)가 이근우(李根宇, 1877~1938)에게 보낸 편지와 한시 3수가 담긴 자료이다. 한 인물의 서간과 자작시·교유시가 함께 전해지는 형태로 보아, 개인적 감회와 문학적 취미가 함께 발현된 자료이다. 첫 번째 시는 온화하고 절제된 어조 속에 유배나 장기 체류 중의 감정을 담고 있으며, 사대부 문학의 우정과 회고의 정조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시는 풍류와 은일의 정조가 교차하는, 평양 지역 문인들의 교유 모임을 기념한 아집시(雅集詩)의 전형적 사례다. 세 번째 시는 평양 누정시(樓亭詩) 중에서도 특히 정제된 구도와 운율을 지닌 작품으로, 유람의 감흥·역사의 회한·노년의 성찰이 어우러져 있다.
김진우는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일주(一洲)·금강산인(金剛山人)이다. 1918년부터 서화 활동을 본격화하였고, 1946년 대동한묵회(大東翰墨會)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제의 패망이 다가오자 여운형 등과 더불어 건국동맹(建國同盟)을 결성하는 등 독립지사였다.
이근우는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일제강점기 강원도 지역 유력자로 활동하였으며, 1900년대 초반 교육사업에 참여해 동진학교(東震學校) 설립 등 지역민 교육에 기여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관료 생활을 하였다.
편지와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편지의 서두에서 막혀 지낸 지 오래되었는데, 그대는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오랜 단절 뒤의 재교유를 전한다. 이어 초봄에 신선장이란 곳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춘에 서행하였더니 봄이 이미 저물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금은 그리움이 더욱 깊어져 한시를 한 수 지어 보낸다며, 이 시를 곧 화답을 기대하는 교유시로 보냈음을 밝힌다. 며칠 취한 채로 써서 흥이 다했으니, 열흘쯤 후에 귀가할 계획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발신자가 당시 유람 혹은 외지 체류 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간찰에 첨부된 시는 7언 절구로, 평양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화답 요청의 작품이다. “그리워도 만나지 못한 지 이미 한 해가 되었네[相思不見已經年].”로 시작하여, “천리 서쪽으로 와도 그 뜻은 아득하다[千里西來意杳然].”라 하여, 객지의 외로움과 교유의 단절을 노래하였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고향의 꽃은 이미 피고 술은 익었을 터인데[故園花發酒應熟], 이 밤의 그리움은 달과 함께 걸려 있구나[此夜歸心月與懸].”라며 봄밤의 정한과 고향 회귀의 염원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다음 시는 「송석암아집[松石庵雅集]」이라는 시제 아래 모임을 기념한 칠언 율시이다. “평양 3월, 제비가 돌아오는 시절에 옛 벗을 찾아가다로 시작하여, 봄의 교유 장면을 그린다. 함련에서는 “숲 아래 읊조리면 새소리가 화답하고, 해 질 무렵 취해 꽃그늘이 드물다.”로 문인의 풍류와 한적한 모임의 정취를 묘사한다. 경련에서는 “십 년 세월 풍우에 혼이 끊어질 듯하나, 강호의 꿈같은 인생이 어찌 이리도 덧없는가.”라 하고, 미련에서는 “비록 한 치의 공도 이루지 못했으나, 몸은 아직 성하니 돌아가 밭을 일구며 책을 읽겠다.”라 하여, 퇴거(退居)의 결심과 문인적 자각을 노래하였다. 다음 시는 ‘일찍이 연광정(練光亭)에 올라[早登練光亭]’라는 시로, 평양의 대표적 누정(樓亭)을 배경으로 한 유람시이다. “남쪽에서 천 리를 온 나그네, 첫 번째 명산을 유람하네.”로 시작하여, 평양의 자연과 누정의 경치를 묘사하고 있다. “꽃 피고 맑은 물 벽에 부딪히며, 구름이 푸른 누각으로 돌아오네.”라는 시구는 평양의 풍광미를 함축적으로 그린 명문이다. “옛 성은 전란을 겪어 허물어졌고, 새벽의 종소리가 먼지 같은 시름을 씻어낸다.”라는 구절을 통해 전쟁 이후의 폐허와 평화의 감회를 교차시켰다. 마지막 미련에서는 “옛날 바위산의 일들을 돌이켜보니 어느덧 백발이 되었구나.”라 하여, 유람과 회고가 결합된 서정적 결구를 이룬다.
제목 없음
【065-2】京城 齋洞 一二○ 李根宇先生 啓
【065-3】平壤 鷄里 法橋局留 金振宇
【068】鏡農仁兄台鑑 阻之久矣/ 故人乎平安否 早春訪/僊庄 而未晤 仲春作西行而/春已暮 此時懷仰 益勤益勤 聊付一絶 而又添日昨所拘幾/句 恭俟/【069】斤正而/賜和 弟多日醉寫 還覺興/盡 一旬後歸巢爲要 姑閣 仍/頌/文祺
己巳春暮望夜 一洲弟 拜
【067】
相思不見已經年
千里西來意杳然
故園花發酒應熟
此夜歸心月與懸
[松石庵雅集]
浿陽三月燕來初
客子相尋故友居
唫過林下鳥聲【065-1】和
醉到日西花影踈
風雨十年魂欲斷
江湖一夢意何如
寸功未遂身猶健
歸去田園更讀書
[早登練光亭]
南來千里客
第一江山遊
花【066】發淸流壁
雲歸浮碧樓
故城經戰㥘
曉磬掃塵愁
岩嶽昔年事(嶽在平壤之岩町)
回思已白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