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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50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재면 간찰 / 李載冕 簡札
- ㆍ발급자
-
이재면(李載冕, 1845~1912)
원문내용 宗下 載冕추정
- ㆍ수취자
-
이근우(李根宇, 1877~193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강릉선교장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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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4 × 16.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문건은 모년 모월 모일에 이재면(李載冕, 1845~1912)이 이근우(李根宇, 1877~ 1938)에게 보낸 편지이다. 祭需와 비용 보내준 것에 감사하는 내용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문건은 모년 모월 모일에 이재면(李載冕, 1845~1912)이 이근우(李根宇, 1877~ 1938)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편지를 작성한 시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발신자 이재면으로 작성된 점으로 보아, 이재면이 이희로 개명하기 이전인 1910년 8월 24일 이전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간찰은 당시 가문 운영, 경제적 의례 부담, 노년기 건강 관리, 그리고 친족 간 물질적·정서적 의존 관계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이희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며, 부친은 흥선대원군[李昰應]이다. 1864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규장각 대교·예문관 검열·승정원 주서·이조판서 등을 거쳤다. 1900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고,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황족대표로서 조약에 동의하였다. 같은 해 8월 24일 ‘이희(李熹)’로 개명하고, 8월 29일에는 ‘이희공(李熹公)’으로 봉해졌다.
이근우는 본관은 전주, 호는 경농(鏡農)이다. 강릉(江陵) 출신으로, 구한말·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교육사업가로 활동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맡았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을 기반으로 동진학교(東震學校)를 설립하는 등 지역 교육을 이끌었다.
서두에 그간의 서신 단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부를 확인하는 전형적인 문투로 시작한다. 이어서 제사에 필요한 일곱 가지 제수(祭需)를 보내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며, 더불어 1000냥이라는 거액의 금전까지 보탠 것에 대하여 더욱 무엇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언급한다. 이는 단순한 물품 왕래가 아니라, 제례와 재정 문제를 함께 해결해 준 은혜에 대한 각별한 감사를 표한 것이다. 끝부분에서는 봄철 과거 시험과 관련된 여러 절차가 무사히 진행되었음을 축하하고 있으며, 이는 편지 수신자가 학문적·관직적 길에 있는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추신에는 발신자가 고령으로 인해 기력이 쇠약해져 인삼이 아니고서는 건강을 억지로 지탱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따라서 혹여 수신자가 인삼을 보내줄 수 있다면 그 은혜가 더욱 크고 감사할 것이라 덧붙였다.
제목 없음
阻餘承慰/ 旅祺增重 七種祭需 已極緊感/ 又伴以當文千兩 尤未知如何仰謝/ 此頌/旅綏
卽 宗下 載冕 頓/
春闈諸節隆寧 奉賀奉賀
年老氣損 非蔘料/難以强作 如有/惠念 尤感尤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