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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41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위답(慰答)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10년 이희 간찰 / 李熹 簡札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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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李熹, 1845~1912)
원문내용 宗下 熹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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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李根宇, 1877~1938)
원문내용 江陵 船橋靜座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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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 雲下 謝函(운현궁)수취지역 江陵 船橋靜座 回納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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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2월 1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戌臘月旬四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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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5.1 × 34.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910년 12월 14일에 이희(李熹, 1845~1912)가 이근우(李根宇, 1877~ 1938)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친 喪事에 대해 위문하는 편지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910년 12월 14일에 이희(李熹, 1845~1912)가 이근우(李根宇, 1877~ 1938)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선 후기 또는 근대 초의 상례(喪禮) 이후에 주고받은 부의(賻儀)·제수 답례 편지의 전형으로, 가족 혹은 문중 간의 애도와 감사의 예를 정중하게 표한 간찰이다. 발신자는 장례를 치른 뒤 조문과 제물(祭需)을 보내준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슬픔 속에서도 의례를 다한 심정을 정제된 문체로 전하였다. 전반적으로 이 간찰은 상례 이후 부조와 위문에 대한 예법적 회답 형식을 잘 보여주며, 개인적 슬픔과 사회적 관계망이 교차하는 조선 후기·근대 전환기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희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며, 부친은 흥선대원군[李昰應]이다. 1864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규장각 대교·예문관 검열·승정원 주서·이조판서 등을 거쳤다. 1900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고,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황족대표로서 조약에 동의하였다. 같은 해 8월 24일 ‘이희(李熹)’로 개명하고, 8월 29일에는 ‘이희공(李熹公)’으로 봉해졌다.
이근우는 본관은 전주, 호는 경농(鏡農)이다. 강릉(江陵) 출신으로, 구한말·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교육사업가로 활동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맡았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을 기반으로 동진학교(東震學校)를 설립하는 등 지역 교육을 이끌었다.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상례 직후의 애통한 정황이 선명하다. 발신자는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이어서 자신이 치른 선부군의 상제가 이미 끝났음을 알린다. 그러나 애통한 곡성이 끝이 없고, 그 슬픔이 여전히 극심함을 토로하였다. 또한 매년 제향 때마다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비통함을 전하며, 그 심정을 언어로 다 형용할 수 없음을 고백하였다. 이어서 수신자가 보내온 제수 20원과 여러 물품에 대해 깊이 감사의 뜻을 밝히면서, 이러한 물질적·정서적 도움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전하였다. 마지막에는 시절의 안녕과 수신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예를 다하지 못함을 사과하는 뜻을 전하였다.
제목 없음
江陵 船橋靜座 回納
雲下 謝函
庚戌臘月旬四日
阻餘承讀/ 來椷 藉諗/靜體萬重 轉眄之間/ 令本生先府君喪制 已闋/ 窃想呼號罔極 去益靡/逮矣 宗下 喪餘隔日 年年/慟霣 曷以形喩 祭需/卄元與各種 記念不忘 有/此情注 感謝莫名 此頌/時祉 不備/亮炤/
宗下 熹 拜謝/
庚戌臘月十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