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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6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서만순 간찰 / 徐晩淳 簡札
- ㆍ발급자
-
서만순(徐晩淳, 1870~195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근우(李根宇, 1877~193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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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강릉 선교장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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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重陽日 弟 徐晩淳 拜拜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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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3.5 × 28.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모년 9월 9일에 서만순(徐晩淳, 1870~1950)이 이근우(李根宇, 1877~1938)에게 보낸 편지로, 가족 간의 경제적 곤궁과 제사(祭祀) 준비의 어려움을 토로한 간찰로, 가문의 제례 의무와 생활 현실이 충돌하던 당시의 가족 윤리와 생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모년 9월 9일에 서만순(徐晩淳, 1870~1950)이 이근우(李根宇, 1877~1938)에게 보낸 편지로, 가족 간의 경제적 곤궁과 제사(祭祀) 준비의 어려움을 토로한 간찰로, 가문의 제례 의무와 생활 현실이 충돌하던 당시의 가족 윤리와 생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발신자는 곧 다가올 조모와 모친의 기일을 앞두고, 제사 음식을 마련할 형편이 없어 깊은 괴로움에 빠진 심정을 절절히 호소하였다. 이 편지는 조선 후기 가족 제례 문화의 물질적 기반, 빈곤한 지식인의 생활상, 형제 간의 상부상조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생활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서만순은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중성(仲成), 호는 취간(翠澗)이다. 1891년 과거에 급제한 뒤 규장각 직각(奎章閣直閣)·중추원 의관·홍문관 시독 등을 역임하였다.
이근우는 본관은 전주, 호는 경농(鏡農)이다. 강릉(江陵) 출신으로, 구한말·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교육사업가로 활동하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맡았으며, 강릉 선교장(船橋莊)을 기반으로 동진학교(東震學校)를 설립하는 등 지역 교육을 이끌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근래 형의 건강이 더욱 왕성하시다니 기쁘다며 형의 평안을 축원한다. 그러나 자신은 형편이 날로 어려워 근심이 깊다며 병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중반부에는 자신의 비극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조모의 기일이 내일 저녁, 어머니의 기일은 다음날로 이어지는데, 제사를 위한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고 토로한다. 제물이 많고 적음은 가세의 형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지만, 전혀 준비조차 못 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정이 부끄럽고 괴로워 차마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며, 형이 이 사정을 헤아려주기를 간청한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구체적인 도움 요청이 이어진다. 발신자는 사정이 급박하여 형께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정한 금전적 원조를 부탁한다. 이는 단순한 금전 청탁이 아니라, 가문의 제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사정을 말씀드리는 것조차 부끄럽고 송구하지만, 그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며 간절히 형의 용서를 구하고, 정중히 글을 맺었다.
제목 없음
市內齋洞一一○ 李參議(官章 根宇氏) 親殿
舟橋町二三六 徐晩淳
伏詢日來/兄體萬旺昻頌 弟狀依劣 而難堪/之憂 去益甚焉 目下 祖妣忌辰 在於/明夕 先妣忌辰 連在日間 而祀需亦無/措辦之道 他尙何說 祭品豐薄 雖云/稱家有無 至於全闕 爲人子孫 不可行/者 而此個切悶之事 情必非無間之地/ 不可煩說 望須/諒此悶隘急切之狀 另念另圖 多少間/期於惠賙 則其所緊感 當如何 勢之/末必不得已 又此告悶 媿悚萬萬 只祝/厚恕賜敎而已 餘留道 不備上/
重陽日 弟 徐晩淳 拜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