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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31_026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19년 김난순 간찰 / 金蘭淳 簡札
- ㆍ발급자
-
김난순(金蘭淳, 1781~1851, 개인)
원문내용 孤子 金蘭淳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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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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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819년 10월 8일간지연도 己卯왕력추정시기본문 己卯十月初八日 孤子 金蘭淳 再拜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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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여러 장의 간찰을 粘連하여 두루마리로 정리한 자료)
- ㆍ정의
- 이 간찰은 1819년 10월 8일에 김난순(金蘭淳, 1781~1851)이 자신을 고자(孤子)라 칭하며 보낸 상장(喪狀) 형식의 편지다. 발신자는 형제를 잃고 상중(喪中)에 있음을 드러내며, 집안과 가문의 곤란한 사정을 친족에게 알리고 도움과 이해를 청한 것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국학진흥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19년 10월 8일에 김난순(金蘭淳, 1781~1851)이 자신을 고자(孤子)라 칭하며 보낸 상장(喪狀) 형식의 편지다. 발신자는 형제를 잃고 상중(喪中)에 있음을 드러내며, 집안과 가문의 곤란한 사정을 친족에게 알리고 도움과 이해를 청한 것이다.
서지적으로 조선 후기 상례 간찰의 전형을 보여주면서도, 단순한 애도의 표현을 넘어 당시의 토지 관리·관청 절차·가문 내 경제적 곤란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점에서 의례사와 생활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다.
김난순은 본관 안동(安東), 자는 사의(士猗), 호는 벽곡(碧谷)이다. 1813년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홍문관 부제학·황해도 감사·이조 참판·예조 판서 등에 이르렀으며 이후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서예와 문장에 능했으며,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수신자의 안부를 대략 살폈음을 밝히며, 다시 초겨울의 정무와 건강이 무사한지 묻는다. 이어 새로 부임한 관직이 번거로운 일 없이 순조롭기를 축원하였다. 그러나 발신자 자신의 처지는 깊은 상실감 속에 있었다. 그는 잇따른 상사로 인한 황량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중반부에서는 구체적인 토지 문제와 행정상의 곤란이 언급된다. 발신자는 면천 지역 전장(田庄)과 관련된 일이 숙부의 뜻과 상충되어 혼란이 빚어졌음을 밝혔다. 이는 상속된 토지 관리에서 친족 간 의견 불일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어 최근 가을 제향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전하며 가문의 상속 문제와 제례 문제가 얽혀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행정 절차와 관련된 언급도 나타난다. 호패(號牌)나 가호(家號) 문제를 관청에 올려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는 가족 구성원의 변동과 상속 문제로 인해 행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발신자는 일이 늦어져 수신자에게 부담을 끼친 것을 사과하며, 자기 집안일조차 끝맺기 어려운데, 남의 집안 문제를 대신 처리하는 것은 더 어려운 법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말미에서는 수신자가 타 고을에서 처리해 준 사무나 도움에 대해 깊이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였다. 또한 도형책자(圖形冊字)가 이곳에 있음을 알리고 추후 처리를 부탁하였다. 끝으로 발신자는 상중의 어지러운 형편 때문에 장황히 쓰지 못했다고 양해하며 글을 마무리하였다.
제목 없음
稽顙 頃因舍兄往復 略審/安候矣 更伏問始寒/ 政餘體度若何 仰慕萬萬 新莅/爲政 亦無惱神之端否 孤子 尙此/■頑 奄見冬序之又屆 哀廓罔極/ 夫復何喩 沔川田庄事 舍伯未/詳顚末 與指敎之意 未免矛/盾 想應致訝也 間作楸行 日前/始還 玆以追告 口字號牌子 愼其家/號以呈 第移麾他道 亦有周旋/之路耶 旣有更送之敎 故如是/■落後貽勞 不安不安 人情/ 雖自已事 率多鮮有終之/歎 況他家難爲之擧也/ ■■■■逈出/ ■■感服 今/■他邑 ■/■■■■ ■/別釐華/ 豈不深感銘/謝處耶/ 圖形冊字/ 亦在此處/耳 爲此更/候 不次 上候疏
己卯十月初八日 孤子 金蘭淳 再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