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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3_01_A00023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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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조인영(趙寅永)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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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이후(李垕, 1773-1832)로 추정됨.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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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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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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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29.6 × 192.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점련문서
- ㆍ정의
- 여러 장의 간찰을 粘連하여 두루마리로 정리한 자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모년 모월 모일에 전동(磚洞)에 거주하던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이 선교(仙橋)에 보낸 답장 편지이다.
이 편지의 발신자는 여러 장의 편지가 점철되어 붙어 있는 양상과 글씨체로 보아 조인영으로 추정된다. 편지 피봉에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인물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지명만 밝히고 있다. 서지적으로는 관례적인 교유 간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시읍(試邑)과 관련된 지역적 사정을 언급한 점에서 문사들의 과거 시험 준비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이 간찰은 조선 후기 문사들의 교유 방식, 과거 시험 운영을 이해하는 데 가치를 지닌다. 조인영(1782~1850)은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경(羲卿), 호는 운석(雲石)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대사헌·형조 판서·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십여 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가 재정의 확보와 민생 문제에 대한 개선책을 자주 건의하였고,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우리나라의 금석문(金石文)을 수집, 금석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널리 교유하지 못하려는 것이 아니나, 예에 따른 제약으로 내가 직접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스스로의 한계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에게는 직접 찾아가 교유를 넓히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기며, 단지 춘천에서 작성한 한 통의 글만을 바친다고 한다. 이어서 춘천(春川)이 시험 고을이며 또한 주필(主筆)을 맡게 된다고 적어, 춘천에서의 과거 시험과 그곳에서 담당하는 직책과 관련하여 편지를 보낸 까닭을 밝히고 있다. 결국 발신자는 교유를 확대하고 싶지만 규례와 형편상 직접 나서지 못하고, 대신 시험과 관련된 장소와 인연을 통해 문서를 전달하면서 정중히 뜻을 표한 것이다. 이는 시험을 둘러싼 문사들의 현실적 고민과 교유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며, 편지가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제도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제목 없음
仙橋哀廬 回納
磚洞謝疏 除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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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不欲廣夷之周旋 而■■例 非轉■所可爲者 故只以春川一書奉呈 盖聞春是試邑 亦當主筆云故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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