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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홍현주간찰(洪顯周 簡札)

기본정보
해제
원문/국역
ㆍ자료ID
D004_01_A00226_001
ㆍ입수처
오죽헌 시립박물관
ㆍ자료유형
고문서
ㆍ유형분류
서간통고류-간찰(簡札)
ㆍ주제분류
ㆍ문서명
1831년 홍현주간찰 / 洪顯周 簡札
ㆍ발급자
홍현주(洪顯周, 1793~1865)
원문내용
추정
ㆍ수취자
원문내용
추정
ㆍ지역정보
발급지역
수취지역
ㆍ발급시기
1831년 8월 11일
간지연도
왕력
추정시기
본문 辛卯 八月 十一日
ㆍ형태정보
점수 1
크기 35.3 × 57.4
접은크기 ×
서명
인장종수
인문판독
보존상태
언어
자료형태
ㆍ정의
신묘년(1831) 8월 11일에 기하(記下) 홍현주(洪顯周, 1793~1865)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ㆍ기타사항
ㆍ현소장처
ㆍ지정문화재
이름 분류 지정년도
신묘년(1831) 8월 11일에 기하(記下) 홍현주(洪顯周, 1793~1865)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원폭과 함께 배접된 상태로 현전하여 원래 간찰첩 등의 형태로 제책되어 있던 것의 낙장으로 보인다. 발급자 정보로 ‘永明尉 候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명위’는 발급자 홍현주의 봉호(封號)이다. 그는 정조와 후궁 수빈박씨(綏嬪朴氏) 사이에서 태어난 숙선옹주(淑善翁主)와 혼인하여 왕의 부마가 되었다. 『경국대전』 「이전(吏典)‧외명부(外命婦)」를 참조하면, ‘왕녀(王女)’는 무품(無品)의 ‘공주(公主)’와 ‘옹주(翁主)’가 있는데 공주는 왕비에게서 태어난 적녀(嫡女)의 호칭이고 옹주는 왕의 후궁에게서 태어난 서녀(庶女)의 호칭이다. 또한 같은 법전의 「이전‧경관직(京官職)」에 수록된 정1품아문인 ‘의빈부(儀賓府)’는 공주와 옹주에게 장가 든 부마를 관장하는 관부로서, 옹주에게 장가 든 사람에게 처음 제수하는 품계와 봉호는 ‘종2품 위(尉)’라고 명시되어 있다. 홍현주는 법전에 따라 종2품의 영명위에 봉해진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 정보로는 ‘三房棣案執事 入納’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삼방(三房)’은 외국으로 파견되는 세 사신의 처소인 상방(上房), 부방(副房), 삼방(三房)을 가리키기도 하고, 상방은 ‘정사(正使)’, 부방은 ‘부사(副使)’, 삼방은 ‘서장관(書狀官)’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체안’이라는 말을 통해 당시 사신단의 서장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로서 해당 인물과 그의 형제들을 포함한 복수의 인물들이 수신자임을 알 수 있다. 『순조실록』 1831년(순조 31) 7월 22일 기사를 참조하면, 당시 중국에 보낼 사은사로서 정사 홍석주(洪奭周), 부사 유응환(兪應煥), 서장관 이원익(李遠翊)을 소견한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이 간찰의 수신자는 서장관 이원익과 그의 형제들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피봉의 상단 봉함처에 답인된 인장은 흑색 원형의 형태로서 정확한 인문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발급자 개인의 신분에 따른 인장으로 추정된다. 하단 합금처에는 발급자의 수결이나 결구가 없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와 이별하는 것은 서운하지 않고 부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형제가 함께 변방 구름을 빛내고 요동의 서리에 큰 이불을 함께 덮으면서 음식은 이와 함께 맛을 살피고 객지에 매인 시름은 이 때문에 회포를 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은 상대와 처지는 같으나 행적이 달라 중도에 수레를 돌리게 되어 다만 정신만 상하게 되었으니 상대의 행차가 어찌 부럽지 않겠냐고 했다. 이별의 슬픔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부럽다[羨]’는 한 글자에 모두 담겨있다고도 했다. 가을비가 내려 풍광이 맑고 남은 더위가 물러난 이러한 때에 형제분들의 체후와 기거가 연일 보호되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시간을 계산 해 보면 상대의 행차가 의주에 당도했을 것인데 만 리길 계요(薊遼)로 가는 길을 수레 앞에 걸터앉아 칼 차고 군복 입은 채 관문을 나가는 흥취가 있을 것이므로 이것 또한 한 가지 부러운 점이라고 했다.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 적막하게 지내니 도리어 길에서 흔들리는 수레에서 고생하는 것만 같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근황이나 특히 사행과 관련한 실제 사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홍현주는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약헌(約軒), 본관은 풍산(豐山)이며, 부친은 홍인모(洪仁謨)이고, 홍상한(洪象漢)의 증손자이다. 정조의 부마로서 영명위에 봉해졌다. 1815년에 지돈령부사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저서로는 『해거시집』이 있다.

    참고자료

  • · 『經國大典』 『大典會通』 『純祖實錄』 『承政院日記』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제목 없음

三房棣案執事 入納/永明尉 候書/[封緘印] 與執事別 不悵伊羨 棣萼聯輝於關雲 大被共覆於遼霜 飮食與之察味 羈旅以之忘懷 如記下者 地同而跡殊 中路回車 獨自傷神 執事之行 如之何不羨 解携之悵不待言 而包涵在羨字中矣 秋雨淸色 殘暑退伏 此時棣候起居 連護萬相 屈指光陰 行旆想抵灣上 萬里遼薊 橫在車前 尺劍戎衣 行將有出塞之快矣 此又一羨也 記下 歸家涔寂 返不如在途撼頓之苦耳 餘惟希行李保重 不備 辛卯 八月 十一日 記下 洪顯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