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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목록상(訂正東醫寶鑑 目錄上)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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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목록하(訂正東醫寶鑑 目錄下)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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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내경편 권1(訂正東醫寶鑑 內徑篇 卷一)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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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내경편 권2(訂正東醫寶鑑 內徑篇 卷二)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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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내경편 권3(訂正東醫寶鑑 內徑篇 卷三)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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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외형편 권2(訂正東醫寶鑑 外形篇 卷二)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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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1(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一)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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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2(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二)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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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3(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三)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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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4(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四)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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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5(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五)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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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6(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六)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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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7(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七)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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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8(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八)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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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9(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九)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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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10(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十)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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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정정동의보감 잡병편 권11(訂正東醫寶鑑 雜病篇 卷十一)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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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정정동의보감 탕액편 권1(訂正東醫寶鑑 湯液篇 卷一)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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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탕액편 권2(訂正東醫寶鑑 湯液篇 卷二)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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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동의보감 탕액편 권3(訂正東醫寶鑑 湯液篇 卷三) | 강릉 선교장 전주이씨 효령대군후손가 텍 이
허준 봉교찬(許浚 奉敎撰, 1539~1615) | 자부-의가류(醫家類) | 목판본 | (日本 原刻本) | 【光緖十有六年: 序】 | 上海(中國) | 掃葉山房 | 【1890년】 | 26.9 × 17.6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 內題紙: 日本原刻 東醫寶鑑 潚水金爾孫署 [四角朱印]掃葉山房督造書籍. 智와 信은 包匣 있음. 조선 선조때 허준(許浚, 1539~1615) 등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들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서(醫書)들 및 임상의학적(臨床醫學的) 체험을 통한 치료방(治療方)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한의학(漢醫學)의 백과전서. 본서는 일본에서 1722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가 중국에서 1890년 이후 다시 간행된 책임. 본래 이 책은 의약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8대 쇼군 도꾸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명으로 미나모토 도오루가《동의보감(東醫寶鑑)》을 일부 정정하고 간행한 책임. 그런데 인쇄를 서두르며 〈탕액편(湯液篇)〉에 한글로 쓰여 있는 약재를 미처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해 한글 그대로 옮겨 간행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