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당

  •  옛 문서 이야기
    •  사람 이야기
    •  땅 이야기
    •  별별 이야기
  •  소장자 이야기
  •  이달의 자료
홈 > 이야기 마당

연적과 그녀의 아들인 강아지를 추포해서 돌려보내 주시오

조회수 : 94회
정우진(율곡국학진흥원)
송나라에서 들여온 종법제도는 단순히 역사적 제도라기 보다는 이념이자 종교이며 철학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태도가 그랬다. 종법제도가 이식됨에 따라 정주의식이 강화되고 장자상속에 토대한 가문이 중시되었으며 가문의 번영이 개인의 영광을 압도했다. 가문의 유지를 위해서는 상당한 토지가 필요했고 경작을 위한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노비제를 통해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했다. 사람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소유하는 노비제도는 고려 때도 있었으나, 조선의 노비제는 보다 광범위하고 철저했다. 노비의 소유는 가문의 번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노비수는 당연히 가문의 번영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전의 역사와 철학을 통해 궁극적 자유를 체험한 바 있던 이들은 도망쳤고, 소유자들은 잃어버린 노비를 좇았다. 1763년 강릉대도호부에서 함경도 정평부定平府에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문서의 좌측 하단에 대자로 관關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관문關文의 표지다. 관부 사이에 전하는 공문서는 위계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먼저 관문은 상급 혹은 대등한 관부에서 다른 관부에 보내는 것으로 일종의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위계 상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공문서를 첩정牒呈이라고 한다. 상급관부에서 하급관부로 보내는 문서라도 내용에 따라 다시 나뉜다. 무엇인가를 요청할 때는 관문의 형식을 따르고, 결정 사항을 통보하거나 시행을 지시할 때는 감결甘結이라는 문서로 작성한다. 이 문서는 강릉대도호부에서 무엇인가를 요청하기 위해 함경도 정평부에 보낸 관문이다.
1763년 강릉대도호부 관문
사실 이 문서는 맥락을 정확히 모르면 해석이 불가한 부분이 적지 않은데, 유감스럽게도 앞뒤 맥락을 전해주는 다른 자료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추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추정의 단서 중 하나는 이 문서가 강릉 최씨 문중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부 사이에 수수된 공문서인 관문이 개인에게 전달된 셈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본문에 먼 곳의 백성이 헛되이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글[俾無遠民空返之弊]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관문은 강릉부 소속 관리나 역리가 아니라 강릉 최씨 산황 장현댁에서 직접 가지고 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가정에 토대하면 이 공문서가 사가私家에 소장된 경위도 설명할 수 있다. 사안의 담당자인 최생원댁에서 직접 관문을 함경도 정평부에 전달하고 정평부에서 사안을 처리한 후 이 문서는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고 해서 혹은 이미 처결되었음을 증빙할 수 있도록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위 문서에서 어느 곳이 최생원댁 노비 사봉이 제출한 청원서의 내용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강원도 강릉대도호부사가 상고한 일을 말씀드립니다. 저희 강릉부 내면에 거주하는 최생원의 노비 사봉이 제출한 소장에서 말하길 ‘자신의 상전댁 사환노비인 병진생 연적과 연적의 첫째인 무인년(1758년)생 노비 강아지 등 둘이 임오년(1762년) 3월 3일 밤에 다른 이가 불러 정평 땅으로 도망가 버렸으므로 바로잡아오려 했으나 먼 곳의 다른 관부에서 염려할 수 있어 감히 이번에 앙소한다’고 하기에 해당 지역에 이문을 작성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사대부가의 사환노비를 몰래 꼬드겨 내는 못된 습속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니 이런 짓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관문이 도착하는 대로 꼬드긴 이를 적발해서 징치하여 주시옵고 위의 연적 등 두 사람은 바로 잡아서 보내어 먼 곳의 백성이 헛되이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일로 관문을 보내니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관문이 잘 도착했으면 합니다.
최생원댁이라고 했는데 이곳의 최생원은 최태관(崔泰觀, 1689~1773)이다. 강릉 최씨는 시조를 기준으로 전주계, 경주계, 강화계로 나뉜다. 이 중 강화계는 충재 최문한(崔文漢, 1320-1395)을 시조로 하는데, 최문한은 고려 충숙왕의 부마로 고려의 국운이 쇠하자 현재의 강릉 임당동 말루터인 마상리에 정착했다. 강릉최씨 문한계는 6세손에 이르러 통정공파, 창봉공파, 참판공파 등의 여러 지파로 나뉘었다. 강릉최씨 산황 장현댁은 참판공파 최순(崔洵, 1519~1549)의 후손이다. 산황 장현댁은 본래 장현에 살았는데, 최태관에 이르러 산황리로 이주했다. 1738년 호구단자(A010_01_A00009_001)에는 최태관의 거주지가 남면이리南面二里로 되어 있고, 1741년 호구단자에는 북면이리北面二里로 되어 있다. 최태관은 1738년~1741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현재의 강릉 홍제동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1752년 10월에 작성된 최태관의 호구문서 노비질 제일 뒤에 ‘연적(連的, 관문에는 연적軟的으로 되어 있다. 노비의 한자표기는 들쑥날쑥하여 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나이 18, 병진년생’이라고 되어 있다. 위 관문에서는 연적이 1762년에 도망갔다고 하고 있으므로, 함경도로 도망갔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1758년생인 아들 강아지江阿之는 다섯 살 이었다. 같은 호구단자에는 연적을 막년莫年과 함께 묶어서 절현節現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절현은 처음 나타났다는 뜻이다. 1768년 최태관 준호구(A010_01_A00021_001)의 노비질에는 ‘연적, 나이 33, 병진년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녀의 아들인 강아지는 보이지 않는다. 도逃라고도 고故라고도 표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강아지는 다른 사유로 이 집을 떠났을 것이다. 강아지는 위 사건이 처리되는 와중에 함경도 정평에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강아지의 아버지가 양인이거나 다른 집안의 사노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억측에 불과하다. 관문을 다시 보면 좌측 하단에 잘려나간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 단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으므로 연적과 강아지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관문은 더 큰 이야기를 들여준다. 관문에서 최생원이라고 지칭되었던 최태관에 집중해보자. 그는 1740년 안팎에 남면에서 북면으로 이주했다. 최태관의 아들인 최광휘(崔光彙, 1728-1800)는 자신의 아들인 최형묵(崔衡黙, 1771~)의 이름과 자에 관한 글[命子衡黙名字說]에서 부친인 최태관이 자손의 번성을 위해 거주지를 이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주는 사실 가문의 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번영의 시기를 맞이한 가문이 그에 맞는 터를 찾아서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선교장의 이내번(李乃蕃, 1692-1781)이 현재 선교장터로 이주한 까닭이 그랬다. 시점에 집중해 보자. 이내번이 선교장으로 이주한 때와 최태관이 산황으로 이주한 시기가 대략 겹친다. 한 가문의 이주는 다른 가문의 이주와 맞물려 있다. 이내번은 창녕조씨 조하행曺夏行에게서 토지를 매입해서 이주했다. 1768년 안동권씨 죽헌파에 경사가 있었다. 아버지 권계학을 이어 권한위가 대과에 급제했다. 곧 이어 강릉사에 큰 영향을 미친 향전鄕戰이 발발했고, 그 여파가 이후의 강릉사 전체에 미쳤다. 그 뿌리에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있다. 강릉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으나 본격적인 역사는 당연히 강릉김씨에게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릉의 조선사는 다르다. 심언광이 시작점에 있다. 강릉의 조선사는 심언광을 골간으로 해서 다양한 인물과 가문이 만들어내는 협력과 갈등의 변주로 읽힌다. 18세기의 자료는 묘한 느낌을 준다. 자료의 편향, 율곡국학진흥원에서 조사 정리한 자료 대부분이 18~19세기의 것이라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이 시기에 강릉에서 모종의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의 얼개가 대략 드러날 때 강릉의 조선사가 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위 관문은, 연적과 그녀의 아들의 추포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라도, 더 큰 이야기로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는 샘물이 지천이 되고 강이 되었다가 합류하면서 바다로 흘러들듯이 자꾸 이어지고 이어져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룬다. 하나의 자료가 없어지면 우리가 써내려 갈 이야기의 한쪽과 그 이야기가 구성해낸 우리마음의 절편이 툭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야기를 찾아내고 정리하고 전해줘야 할 사람으로서 조급증이 생긴다.
이전 김해허씨 (허윤정)
다음 한 인물의 효행(孝行)을 세상에 널리 알리다 : 강릉 유생들의 김동수(金東秀) 정려(旌閭) 포상 요청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