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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천석 이야기 5 :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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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율곡연구원)
노비가 아닌 상절을 매입하기 위해, 이중 계약서를 작성한 것일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즉, 천석이 이봉구의 노비가 아닐 가능성이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시 돌아가 보자. 결국은 자료가 말할 때까지 물어볼 수밖에 없다. 자료가 시작이자 끝이다. 천석이 노비를 소유한 노비였다고 생각한 근거는 버젓이 계약서에 '나(吾)'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관례에 따라 거래를 수노가 대신하는 경우에는 관례대로 '吾'의 자리에 '吾矣上典宅,' '上典宅,' '矣上典宅' 등 상전을 표시하는 말이 와야 한다. A003_01_A01247_001 문서는 1748년 정연안댁 두충이 주인의 위임장에 의거해서 아홉명의 노비를 최생원댁 종 엇산에게 매도하는 매매 계약서다.
1748년 정연안 댁 종 두충 노비 매매 문기
건륭 십삼년 무진년 정월 15일 최생원댁 노 엇산에게 글을 쓴다.
우측에서 글을 쓴 까닭은 상전댁이 외가에서 분배받은 것 중 별도로 얻은 강릉비 정금의 셋째인 비 명례, 첫째인 노 귀태와 비 정화의 셋째인 비 초분, 넷째인 노 돌시 그리고 초분의 첫째인 노 노미, 둘째인 비 기분, 셋째인 노 원재, 넷째 비 좌읍단 등 아홉명을 우측의 같은 집안에서 절충한 가격 팔십냥을 정확히 받고 상전의 패지에 따라 후손까지 모두 영원히 매도하나, 본문기는 다른 전민이 아울러 붙어 있으므로 따로 배탈하고 발급하지 못하니 뒷날 어지러운 말을 하는 이가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일이다.
노비주 정연안댁 노 두충 좌촌
증인 업무 김태삼 착명
업무 강갑신 착명
필집 서원 권일태 착명
천석은 스스로 '비주(婢主)'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의 1748년 정연안 댁 종 두충 노비 매매 문기에서도 노비의 주인을 계약 대리인인 노비 두충으로 적고 있고, 앞에서 보았던 A003_01_A00643_001에서 대리해서 매매계약을 체결한 눈바우도 자신을 재주라고 표현했다. “재주 오생언댁 노 눈바우” 계약을 대리하는 수노 들은 자신을 노비의 주인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관례였다. 천석이 노비의 주인이라는 표현은 천석이 노비의 주인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문제는 나의 상전댁이 아니라 나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의 아카이브에는 모두 13건의 노비매매계약서가 서비스되고 있는데, '나의 상전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나'라고 표현한 경우는 없다. 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자료를 뒤져봤다. 디렉토리 검색상 모두 260종이 서비스되고 있다고 나오지만, 사실 소송문서인 소지류 등 다른 유형의 문서가 함께 묶여 있어서 매매문기자체는 260종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적지 않은 수라서 의지할만하다. 이곳에서도 아직까지 계약대리인인 수노가 나라고 표현한 경우를 보지는 못했지만, 계약대리인이 자신을 노비의 주인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관례였다면,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자료를 더 살펴보면 그런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혹 그런 사례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천석이 격식에 맞지 않게 나라고 표기를 했을 가능성도 상상가능하다. 그렇다면 앞에서 제안한 이야기와는 온전히 다른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
두 개의 다른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 이생원댁 노라고 말한 천석은 이용구의 노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생원댁이라고 불리는 다른 집안의 노비였다. 다만, 상전댁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생원은 엄일복에게 앵매와 앵매의 9살 딸 상절을 52냥에 매입했다가 10년 뒤에 상절만 50냥에 이봉구에게 매도했다.
두 번째 이야기 : 이 이야기는 이용구와 이봉구 형제가 대택, 소택이라고 해서 각기 다른 살림을 하면서도 각기 다른 살림을 했다는 점에서 착상할 수 있다. 즉, 형제간의 거래로 볼 수 있다. 이용구의 노비가 이봉구에게 매도되는 형태를 취했을 수 있다.
1843년의 거래에서 노비를 매입한 이진사댁 수노(首奴)인 성로(性魯)는 이봉구의 호구단자에 등장할 뿐 아니라, 1840년대에 행해진 거래계약서에 빈번히 등장한다. 그는 분명 이봉구의 노비이고 천석에게서 노비를 매입하는 일을 대리했다. 이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천석은 본래 이용구의 노비였을까? 공교롭게도 1833년에 작성된 본문기에 천석은 이생원의 노라고 나온다. 이용구는 생원시에 입격한 인물이다. 천석은 이용구의 호구단자에 이름이 보이지만, 죽은 이로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우리는 이상의 논의에 토대해서 두 문서가 가짜일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첫 번째 이야기, 즉 천석이 이용구의 호구단자에 등장하는 이미 사망한 이가 아닌 다른 집안의 노비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천석의 주인인 이생원도 선교장과는 무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생원이 곧 이용구라는 해석은 당시에 이생원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강릉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상한 가정에 토대하고 있다.
천석은 주인인 이생원을 대리해서 엄일복에게서 앵매와 상절을 매입했다. 그리고 십 년 뒤에 상절만 매도했다. 1833년의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상절의 어미인 앵매는 갑자년 생, 즉 1804년 생이다. 서른 살에 이생원댁에 딸과 함께 팔려왔다가 십년 뒤 스무살이 된 딸 상절은 이진사댁으로 매도되었다. 그녀는 살아 있었을까? 살아서 두 눈을 똑바로 뜬 채로 딸이 자신의 곁을 떠나 다른 집으로 팔려가는 것을 보았을까? 아니면 이미 사망한 상태였을까?
하나의 자료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지어졌다. 하나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즉 본래 양인이던 상절을 매입하기 위해 거짓으로 계약서를 꾸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계약서인데, 다만 천석이라는 이생원댁 노비가 자신의 상전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맞는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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