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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천석 이야기 4 : 상절은 노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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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율곡연구원)
천석과 관련된 두 종의 노비 매매계약서, A003_01_A00378_001와 A003_01_A00445_001는 거짓이다. 동생인 색불은 1784년에 죽었고, 천석의 막내인 귀산은 이미 1769년에 도망갔다. 1783년 이시춘의 호구단자 노비질에는 20구의 노와 30구의 비가 보인다. 다음 식년인 1986년의 이익조 호구단자에는 노비수가 오히려 한 명 늘었다. 전체적으로 선교장의 노비수는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 와중에도 천석의 이름은 줄곧 확인된다. 1792년 이익조 호구단자에도 등장하는데, 1795년 호구단주에는 그의 이름 뒤에 고(故)자가 나온다. 호구단자는 전년부터 준비해서 년초에 발급된다. 그는 1792년~1795년 사이에 사망했을 것이다. 천석은 1765년에 이미 27세였으므로 사망당시에 55~57세 사이였을 것이다.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다. 천석은 살만큼 살다 죽었다. 책을 마저 읽고 8시 30분쯤 산책을 나섰다. 초봄이라 아직 쌀쌀한 기운이 있지만, 걸을만하다. 연구원에서 습지를 거쳐 경포호를 지나 강문해변까지 이르는 길이 나의 산책로다. 별과 바람의 사랑 속에 태어난 온갖 생명이 부산스럽다. 경포호 건너편으로 해운정이 보였다. 심언광이 지은 해운정 앞의 뜰을 직무(直畝)라고 했다. A003_01_A00388_001은 1843년 박종화가 65냥을 받고 박문화에게 65냥을 받고 논을 매도한 거래계약서다.
그들이 거래한 토지는 직무(直畝)에 있는 조자 자호의 1번 논이다. “直畝鳥字一畓” 직무는 토지의 위치, 조는 자호, 1답의 일은 지번 일답의 답은 지목이다. 이처럼 토지거래에서는 토지의 위치, 자호, 지번, 지목을 순서대로 기술한다. 토지의 크기를 기술할 때는 두 가지 기준을 따랐는데 하나는 수확량이고 둘은 파종량이다. 이 논은 수확량 기준으로 20마지기였다. 앵매의 딸 상절을 이봉구가 매입할 때인 1843년 해운정 앞 논 한 마지기의 매매가가 3.25냥이었던 셈이다. 상절의 매매가는 50냥이었다. 당연히 모래내의 땅보다는 해운정 근방의 땅이 고가에 거래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관리비용이 당연히 상승한다. 50냥은 해운정 앞 좋은 자리에 있는 논을 열다섯마지기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너무 비싸지 않은가? 이정수와 김희호의 보고(2008)에 따르면 조선시대 노비의 가격은 큰 차이 없이 대동소이했다. 전체적으로 개관할 때 물가가 상승했으므로, 노비가격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1820년~1860년 사이에 노비가격은 남자가 10.11냥, 여자가 34.16냥이었다. 상절은 여자였다. 비가 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다. 50냥이면 평균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강릉에서 노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고가에 거래되었다. 이정수 등은 강원지역의 노비매매문기를 살펴보지 못했다. 나는 강원지역의 노비매매에 관한 보고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으므로 공식적인 해석을 찾기 어렵지만, 50냥은 인상적이다. 강릉의 노비가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앞의 이정수 등의 보고에 따르면 1750년~1790년, 그리고 1790년~1820년의 노비가격은 각각 9.42냥과 13.47냥 그리고 7.34냥과 11.06냥이다. 그러나 1789년에 이내번은 사환비를 32냥에 매입한다.
건륭 54년 기유년 9월 24일 이동지댁 노 관운에게 밝혀 씀 우측에서 밝혀 쓰고자 하는 것은 나의 상전댁에서 필요한 바가 있어서 홧매의 첫째 일은례 나이 26세 갑신년생 한 명을 너의 상전댁에 12냥에 정확히 받고 상전댁의 패자에 따라 후소생까지 아울러 영원히 방매하되 본문기는 다른 노비가 아울러 붙어 있으므로 발급하지 못하는 바, 뒷날에 다른 소리를 하는 일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해서 바로 잡을 일 재주 오생원댁 노 눈바우 동인좌촌 증인 양신 정귀돌 착명 필집 김정현 착명
1785년에는 김사옥이 자신의 노비 명덕의 첫째인 사내종 막산을 10냥에 이시춘에게 매도했다. A003_01_A00298_001이 해당 문서다.
건륭 50년 을사년 1월 23일 유학 이시춘에게 밝혀 쓴다. 우측에서 밝혀 쓰는 것은 내가 필요한 바가 있어서 명덕의 셋째인 여덟살의 사내 노비 막산을 이시춘에게서 10냥을 정확히 받고 영원히 방매하온 바, 뒷날에 어지러운 말을 하는 일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해서 바로잡을 일. 노주 자필 유학 김사옥 착명
일반적으로 매매할 때는 수노가 대신하고 증인이 참여한 가운데 필집(筆執)이 작성한다. 이 매매 문기는 이런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다. 김사옥에게는 급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때 막산의 거래가액은 8냥이었는데, 8세 아이의 거래액치고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절의 매매금액은 좀 높은 편이지만, 정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대금에서 거짓의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매매계약의 내용을 꾸며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1843년에 상절을 매입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매도자가 이미 죽은 상태였으므로 정말로 50냥을 지불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33년의 매매계약서에 등장하는 엄일복에게는 52냥이 지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봉구는 엄일복에게서 상절을 매입했을 것이다. 무엇을 숨기고자 했을까? 이 거래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뒷탈이 없도록 죽은 이를 매매당사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 매매계약은 불법이었을 것이다. 어떤 불법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은 하나뿐이다. 상절은 매매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녀는 노비가 아니었을 것이다. 엄일복이 상절의 애비였을까? 빌어먹을 놈의 애비가 부인과 딸을 팔았을까?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강릉 바다에 들어가려하다가 부인과 딸에게 넉넉한 집에 들어가 노비로라도 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50냥도 거짓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 저 앞에서 두 개의 길을 그려봤다. 하나는 1843년과 1833년의 매매계약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가정에 토대한 것이고 둘째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후자의 가정에 토대해서 지어진 이야기를 따라왔다. 더 나아가기 전에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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