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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5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7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7년 12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酉臘月卄六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2 × 47.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정유년(1837) 12월 26일에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 정보로 ‘謙弟’만 기록하여 이름에 ‘겸(謙)’이 들어가면서 평교간 정도 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동 문중의 여타 간찰 가운데 ‘김노겸’ 간찰이 다수 있는데, 서체 및 정황 상 동일 인물로 파악된다. 또한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기록된 ‘龍洞候狀’을 통해 발신자가 당시 용동에 거주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그 우측에 ‘鏡湖靜座入納’이라고 기록하여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상대와 오래 격조한 회포를 언급하면서, 늙고 병든 무용한 자신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 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 상대의 조카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호행(湖行)을 갔다가 월전에 돌아와 개창(疥瘡)을 앓으며 지내는 근황을 알렸다. 내년 봄에 과거가 있다면 상대가 기꺼이 올 것인지 물은 뒤, 사동(社洞) 측은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되었고, 박래겸(朴來謙)은 춘천부사(春川府使) 되었으니, 도회(都會) 때 이들과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상대를 위해 기대한다고 하였다. 지난 번 이(李)씨 벗을 통해 보낸 시는 받아 보았는지 물은 뒤 졸렬하여 부끄럽다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과거는 보통 봄에 치러지는 춘위(春圍)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물으면서 이천‧춘천 수령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정황을 통해 당시 유력자를 통한 관계망을 형성하고자 했던 관행의 단편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이 해 12월 11일 이비정사(吏批政事)에서 김교희(金敎喜)가 이천부사에, 12월 24일 이비정사에서 박래겸이 춘천부사에 각각 제수되었음이 확인된다. 김교희는 사간원대사간‧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박래겸은 승정원주서‧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를 통해 본문에서 언급된 ‘사동수령(社洞修令)’은 김교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자가 수여(修汝)이므로 이는 ‘사동에 거주하는 수여 영감’이라는 뜻이다. 발급자 김노겸은 자는 원익(元益), 호는 성암(性菴)·길고자(吉皐子),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사주(金師柱), 아우는 김노석(金魯錫)이다. 1814년(순조14) 식년시에 진사로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혜릉참봉‧예빈시주부‧홍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
- · 『憲宗實錄』 『承政院日記』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積阻可悵臨歲尤熲熲而兄則有便無書置我忘域卽此一款亦可知此漢之老病無用與世相絶久矣還覺浩然浩然第未審臘沍兄候增重賢咸諸友及李友皆平安否面面溸溸弟姑依前拙而間作湖行月前始歸而忽得疥瘡見方作苦私悶私悶明春若有科則兄其肯來否社洞修令作伊川宰朴台來謙作春川宰都會時或有相關否預爲兄企企而世上事亦何可必也向於李友便呈去鄙韻果覽至否荒拙可愧耳餘萬歲除在卽惟冀兄候迓休百福丁酉臘月卄六謙弟拜
鏡湖靜座入納龍洞候狀省式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