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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44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류선양 외 7인 간찰 / 柳善養 외 7인 簡札
- ㆍ발급자
-
류선양(柳善養, 1710~)
정창성(鄭昌聖, 1724~)
정상인(鄭象仁, 1720~)
이재간(李在簡, 1733~1789)
이창임(李昌任, 1730~1775)
서유원(徐有元, 1735~)
박사륜(朴師崙, 1716~)
김재순(金載順, 1732~)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6년 8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 八月 二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5.8 × 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술년(1766) 8월 29일에 춘방(春坊)에 속한 유선양(柳善養, 1710~?) 등 8인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며 계병채(稧屛債)를 거두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병술년(1766) 8월 29일에 춘방(春坊)에 속한 유선양(柳善養, 1710~?) 등 8인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며 계병채(稧屛債)를 거두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春坊 候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들이 소속된 곳이 춘방, 즉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관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서한 자는 유선양, 정창성(鄭昌聖, 1724~?), 정상인(鄭象仁, 1720~?), 이재간(李在簡, 1733~1789), 이창임(李昌任, 1730~1775), 서유원(徐有元, 1735~?), 박사륜(朴師崙, 1716~?), 김재순(金載順, 1732~?)의 총 8인이다. 또한 그 우측에 ‘連源郵軒’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안동 권씨 청풍당 문중 일원 가운데 ‘연원도 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발급연도 등으로 추정하면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으로 볼 수 있다. 그는 1765년 10월 27일에 겸춘추(兼春秋)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12월 22일 친림 도정(親臨都政)에서 연원도 찰방에 제수된 뒤 이 관직을 끝으로 물러나 고향인 오죽헌으로 낙향하였다. 이 간찰이 발급된 해는 찰방에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계병’은 계화(稧畵)를 담은 병풍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사대부가에서 계회(稧會)를 치른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병풍을 제작하던 전통이 왕실에 계승되면서 특히 18세기에는 왕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용도 등으로 확대 제작되었다. 이는 다시 병풍 제작에 소요되는 경비의 증가를 수반하므로, 이를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관원에게 이른바 ‘관례적’으로 부과했던 포진채(鋪陳債)와 함께 계병채 명목의 금품을 상납하게 했으며 뒤로 갈수록 이에 관한 자문[尺文]이 발급되는 등 비교적 공식화 된 상납금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 따라서 이 간찰은 당시 ‘연원도 찰방’이라는 외직에 부임했던 권계학에게 왕실 진연 행사의 계병을 제작한다는 명목의 계병채를 요구하기 위해 발급한 간찰의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당시 진연례은 왕세손빈의 관례를 치른 뒤 설행된 것이므로 춘방에서 계병 제작을 담당하여 계병채를 거두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왕세손빈의 관례는 1766년 8월 9일에 치러졌고, 진연례는 27일에 치러졌다. 이에 관해 발급자 8인의 세자시강원 관원으로서의 이력을 살펴보면, 『승정원일기』 <1766년(영조 42) 8월 27일> 조 기사에서 친림 진연(親臨進宴) 입시(入侍) 관원의 좌목에, “보덕(輔德) 유선양, 필선(弼善) 정상인, 문학(文學) 이창임, 겸문학(兼文學) 서유원, 사서(司書) 박사륜, 겸사서(兼司書) 김재순”이 확인되고, 정창성은 부응교로서 참여하고 있으며 이재간은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창성과 이재간은 각각 보덕과 겸필선의 전임자로서 이 간찰에 연서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진연례를 치른 뒤 약 이틀 뒤에 춘방 소속의 8인의 명의로 당시 지방관으로 부임한 외방 관원들에게 이 간찰이 발급되었을 것이다. 발급자 유선양은 자는 호연(浩然),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유유(柳愈)이며, 1726년 병오 식년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하고 1761년 신사 정시 을과 2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집의‧사간‧승지‧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정창성은 자는 희천(希天), 본관은 온양(溫陽), 부친은 정광은(鄭光殷)이며, 1751년 신미 정시 병과 1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다시 1757년 정해 중시 을과 2위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766년에는 세자시강원 보덕에 제수되기도 했고, 이후 병조판서‧예조판서‧판의금부사‧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정상인은 자는 덕원(德遠), 본관은 영일(迎日), 부친은 정지식(鄭志式)이며, 1744년 갑자 식년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하고 1765년 을유 알성시 병과 2위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승지‧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재간은 자는 여담(汝聃), 본관은 용인(龍仁), 부친은 이중우(李重祐)이며, 1756년 병자 식년시에 생원‧진사 양시 모두 입격하였고, 1759년 기묘 별시 병과 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766년에 겸필선으로 재직한 적이 있고, 승지‧황해감사‧대사성‧이조참판‧경상감사‧이조판서‧대사헌‧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창임은 자는 성윤(聖尹),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이춘제(李春躋)이며, 1753년 계유 식년시 병과 12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정언‧헌납‧교리‧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서유원은 자는 춘보(春甫), 본관은 대구(大丘), 부친은 서각수(徐覺修)이며, 1756년 병지 식년시 을과 2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지평‧장령‧교리‧수찬‧헌납‧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박사륜은 자는 화중(和中), 본관은 반남(潘南), 부친은 박필호(朴弼琥)이며, 1762년 임오 식년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하고, 1763년 계미 대증광시 병과 36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겸열‧호조참의‧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김재순은 자는 응덕(應德), 본관은 연안(延安), 부친은 김묵(金默)이며, 1753년 계유 식년시 생원 2등으로 입격하고, 1759년 기묘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겸열‧승지‧대사간‧경상감사‧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서늘한 가을에 정무 보는 생활이 여러모로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되고 그립다고 했다. 이번 진연(進宴)은 실로 과거에도 보기 드문 경사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마침 상대와 궁료(宮僚)로 있게 되어 이러한 성대한 일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계병(稧屛)을 제작하여 후세에 전할 바탕으로 삼길 도모하고자 이에 대한 비용을 모으기 위해 고례(古例)에 따라 이렇게 연독(聯牘, 연명 서찰)을 낸다고 하면서, 부디 재력에 따라 넉넉히 원조하여 이 아름다운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 ·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丁酉式年司馬榜目』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고) 349.16 사마정유]) 김수진, 「조선 후기 병풍 연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7 김수진, 「19세기 궁중 병풍의 제작과 진상」, 『장서각』40(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김수진, 「계회도(契會圖)에서 계병(稧屛)으로: 조선 시대 왕실 계병의 정착과 계승」, 『미술사와 시각문화』27(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21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자료
원문
伏惟秋凉 政履萬勝 慰溯區區 今番進宴 實是往牒罕有之慶 鄙等 適忝宮僚 覩盛事 歡忭之忱 曷有其極 謀造稧屛 以爲傳後之資 而物力之發簡鳩聚 自是古例 玆以聯牘仰溷 幸望隨力優助 以成美事 如何 餘不宣 伏惟下照 上狀 丙戌 八月 二十九日 柳善養 鄭昌聖 鄭象仁 李在簡 李昌任 徐有元 朴師崙 金載順 頓
連源郵軒 入納 春坊 候狀 [着圖書] 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