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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송정희 간찰(宋正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77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61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오죽헌(烏竹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3년 10월 1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酉十月十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9 × 4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1년 10월 13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61년 10월 13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이다. 청풍당은 권계학이 지은 것으로 권계학의 집안을 가리킨다. 오죽헌은 율곡의 외할머니 용인 이씨가 유산으로 사임당 여동생의 남편인 권화에게 물려준 것인데, 권계학은 이 집안의 지파다. 송정희의 간찰에서는 오죽헌과 청풍당을 구분하고 있고, 구분할 경우에는 권찰방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권계학이 연원역의 찰방으로 재직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연곡은 현재의 강릉과 양양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 본관은 은진(恩津), 송계근(宋啓根)의 아들이며 송계락(宋啓樂)에게 출계(出系)되었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7대손이다. 송준길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이전에 사망했으나 그의 후인들이 노론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색채가 짙은 강릉지역의 유력 문중들과 대대로 교류가 있어 왔다. 송정희는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직후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순로(蓴鱸)는 중국 진나라의 장한(張翰)이 고향의 명물인 순챗국(蓴菜)과 농어회를 먹으려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탐련오두(貪戀五斗)는 녹봉을 탐낸다는 뜻으로, 양양부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음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861년 10월 7일의 간찰(A006_01_A00153_001)에서는 가을 과실을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13~4일 사이에 관리 한 명을 보내겠다는 말이 있다. 이와 관련된 간찰로 송담서원의 화본을 모사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수일 전 연곡에서 마침 강릉의 관리를 만나 서신을 부쳤는데 곧 보셨는지 묻고 겨울의 기후가 이상한 가운데 상대와 다른 집안의 안부를 물은 후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겠고 자신은 한결같이 병들고 못난 상태일 뿐이라고 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전에 보내주신 가을 과실은 정으로 준 것이라 감사할 뿐 아니라, 자신의 고향에도 같은 것이 있어서 맛볼 때마다 곧 고향이 생각난다고 했다. 가을이 이미 다 지났는데 집에 돌아가지 못하니 다만 녹봉 때문이라고 부끄러울 뿐이라고 했다. 이어 송담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족자와 병풍 및 산수도는 이미 더럽혀진 상태이나 아울러 가져와서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관리와 노비를 각 일인씩 보냈고 또 유생 김씨에게 서신으로 간청했으니 바라건대 혜량해주십사 했다. 또 이번 일은 과연 신중해야 하는 것인데도 망령되이 교분을 믿고 번거롭게 해드렸으니 죄송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와 별도로 지난 간찰에 그대의 재종질이 보내온 서신에 작은 종이가 혼입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일을 알지 못한 관인을 담당하는 이가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로 인해 낭패를 겪은 일은 없지만 몹시 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별지] 1
첫 번째 간찰 별지에서는 송담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병풍이 모본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이번에 본을 뜰 것보다는 나을 것이니 받들어 봄으로써 존모하는 정성을 깃들이고자 하니, 자신이 옥산의 외가쪽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반드시 이번에 관리가 돌아올 때 병풍 하나와 난을 그린 족자 하나 그리고 산수도 세 건을 부쳐 보내주시기를 바란다하고 이것들을 싸서 올 초석을 보낸다고 했다.
[별지] 2
두 번째 간찰 별지에서는 서신에 더해서 보내드릴 것이 없어서 다만 고기 세 근을 보낼 뿐이니 부끄럽고 한탄스럽다고 했다. 상대의 재종질과 관련된 일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하면서 알려주십사하고 글을 맺었다.
원문
烏竹軒 執事 權察訪宅 謹封
日前 歷宿連谷時 適逢江邑吏 付候矣 過卽入照否 冬暄乖常 恪詢比間 靜候萬衛 諸宅勻寧否 仰溯不任區區 世下 一直病劣而已 向者俯惠朱實 非但情貺之爲感荷 鄙鄕亦有此物 每嘗珍味之際 輒有蓴鱸之想 而秋色已盡 末由返家 只貪戀五斗 愧歎無已 松潭院齋 所藏畫屛蘭簇 及山水圖 雖已漫漶 並奉來瞻玩事 旣蒙盛諾 故玆起送一吏及一隷 且書懇於金斯文 幸須俯諒另圖 所以奉來之地 切仰切仰 此擧 果係愼重 而妄恃契誼 有此仰煩 還庸悚歎 去月復札中 小紙之混入於令再從姪書中 蓋因火下坼覽之時 不解事知印誤換簡牋之致也 雖無因此狼狽之端 歉歎極矣 餘留續申 姑不備書禮 辛酉十月十三日 世下 宋正熈 拜
[別紙] 1
院中所藏畫屛 雖是模本 必當有愈於自此所模來者矣 區區欲奉瞻 粗寓尊仰之誠者 以忝在玉山外裔也 必於今便之回 以畵屛一坐 蘭簇一件 山水圖三簇 一一付送 千萬切仰切仰 所裹草席付去耳
[別紙] 2
無物伴簡 只以劣肉三斤仰呈 可愧 且歎且歎 營誡日字已過 而令再從姪得失 無由聞知 極鬱極鬱 或可示破耶